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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11. 17

by 자 작 나 무 2024. 11. 17.

2024-11-17

어제 오후에 딸내미 시계를 들고 대전에 있는 모백화점에 다녀왔다. 시골 브랜드 매장에서 시계 건전지 교체 서비스는 일주일 정도 소요되며, 본사에 보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좀 큰 도시는 다를까 해서 찾아갔지만 허사였다.

 

전에 시계 건전지를 직접 교체해 본 적이 있어서 도전해볼까 싶다. 시계 뒤판 뚜껑을 열어야 하는데 언젠가 사놓은 얇은 드라이버 세트가 이사한 뒤로 어디에 잠적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짐정리를 내가 하지 않은 까닭에 일일이 딸에게 물어야 한다. 버리고 왔을지도 모른다.

 

집안 살림살이 100%를 위치까지 정확하게 알고 관리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그렇게 사는 게 내게 너무 힘든 일이어서 손 놓고 마음 내려놓고 나니 편하기는 한데 꼭 뭔가 찾아야 할 때에는 내가 그걸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약간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점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내 성향인 모양이다. 굳이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두루뭉술 잊고 사는 게 내 건강에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내가 원하는 대로 집안 정리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체력이 문제다. 이런 계산이 나오면 더는 생각하지 않고 간결하게 끊어야 한다.

 

태양광 충전으로 잘 가는 시계 하나가 있는데도 딸이 여벌로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시계를 한 개 더 가져가야겠다고 하는 게 변수다. 어차피 시험 치고 나면 다시 애플워치만 차고 다닐 것이 뻔한데 천 원 정도면 될 시계 건전지 하나 갈아 끼는데 만 원 내기가 억울한 거다. 나중에 작은 드라이버를 찾아서 만만한 내 시계 뚜껑을 열어본 뒤에 딸 시계도 열어서 건전지 크기를 확인하고, 다이소에 그 건전지를 파는지 찾아봐야겠다.

 

*

어제 맛있게 먹은 가지 볶음을 오늘 또 해달라고 해서 어제와 비슷하게 한 번 더 만들었다. 이런 경우는 드물다. 아무리 맛있어도 연거푸 해달라고 하지 않는 편인데 어제 만든 가지 요리가 정말 제 입에는 맛있었나 보다. 미리 만들어둔 양념장을 끼얹어서 꼬막을 무쳐내고, 오이고추를 된장 양념으로 무쳐서 곁들인 음식으로 가볍게 아점을 먹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뒤늦게 아점을 먹는 딸과 생활리듬을 맞추려고 아침에 깨면 멍하니 다시 잠들었다가 한참 기다린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딸과 같이 살면서 밥 한 끼 같이 먹지 못하게 되니 마주 앉아서 얼굴 보고 대화할 기회도 줄어드는 것 같다.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깨는 시간에 밥 먹자고 깨우거나 조르지 않고, 딸이 배고플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먹는다.

 

아침 일찍 깨서 조금 긴 하루를 보내고 싶지만, 딸에게 한 가지 맞추려고 하다보니 내 삶에서 오전이 점점 사라진다. 내일부터 일찍 깨서 내가 하려던 일을 집중해서 하고, 다음 주말에 딸이 시험장에 가는 시각에 쫓기지 않게 내 컨디션 조절도 좀 해야겠다. 

 

운이 아주 좋아서 제 입맛에 맞는 문제가 나와서 거하게 잘 쓰지 않는 한에는 이번 시험도 그냥 경험 쌓기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미리 생각하는 나는 나쁜 엄마인가? 꼭 붙을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무게를 실어서 닦달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여태 하지 않던 것을 굳이 지금에 와서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럴 거였다면, 다른 극성 엄마들처럼 서울대 보낸다고 공부에 악다구니를 썼겠지.

 

집에서 아점 먹고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는 이 시간이 내게 주는 편안함, 평화로움, 비슷한 시간을 보내도 느끼기 어려웠던 평화로움을 느끼면서도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숙제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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