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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동태탕

by 자 작 나 무 2024. 11. 19.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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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닷가 태생인 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해물을 많이 먹고 자랐다. 한때 집에 고깃배까지 있었다. 시장에서 나오는 생선을 비롯하여 파래, 미역 등의 해초도 다른 지역에 사는 또래보다는 많이 먹을 기회가 있었다. 먹는 것과 지능의 관계에 대해 쓴 글을 읽어보면 그 덕분에 내 머리가 학창 시절에 그럭저럭 쓸만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자란 내 형제와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두뇌에 제공하는 영양소가 다른 음식보다 풍부해서 기본적으로 장점이 될 수는 있겠다.

 

고향에서 살면서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12년의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에 거의 매년 영양실조로 쓰러지기 일쑤였고, 잘 먹어도 깡말라서 늘 정상 체중 이하의 체격으로 살았다. 조금만 힘들면 어지럽고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예민했고, 다양한 육체적 고통에서 늘 자유로울 수는 없어서 그 고통에서 정신을 분리하는 연습을 해야 할 정도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키워드는 먹는 것뿐만 아니라, 집중하는 성향이 내 유년 시절을 모범생에 우등생으로 살 수 있었던 비결 중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집중해서 될 때까지 하는 거다. 한두 번 해서 손 놓지 않고, 해야 한다면 될 때까지 하는 거다.

 

요즘은 집중도 잘 안 되고, 될 때까지 꼭 해야 한다고 설정할만한 것도 붙들지 못해서 산만하다.

 

글을 쓰는 목적이 생각을 정리해서 문제의 근원을 찾고 어떻게 해결할지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을 간결하게 정리하기 위함이어서 시작이 어떻든 생각이 흘러나오는 대로 주절주절 쓰고 만다.

 

 

*

동태탕은 비린내 적은 얼린 명태를 넣고 양념 맛에 먹는 것이지 동태 살이 썩 맛있지는 않다. 대구탕에 비하면 동태탕은 바닷가에서 다양하고 맛있는 생선을 먹고 자란 내 입에는 크게 인상적인 맛은 아니다. 날이 추워지면 시장에 나오는 대구로 끓인 대구탕의 깔끔하고 시원한 맛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런데 어느 날 먹은 동태탕 맛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밥을 먹다가 동태 건더기를 일부러 한 덩이 더 건져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맛있게 먹었다. 내 기억은 그날 먹은 동태탕 이전으로 거슬러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멈춘다.

 

더 나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기억이 거기에서 멈춰서 박제된 상태로 종종 기억의 문턱을 들락거린다. 그전엔 아무 생각 없이 앞에 있는 음식을 먹는 데만 급급했는데, 그날은 앞에 앉은 사람 눈썹만 보고 있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동태탕이 담긴 냄비와 눈썹 사이를 부자연스럽게 오가는 내 시선은 방황하느라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 기억을 잘 소화하지 못하면 당분간 동태탕은 먹지 못할 것 같다.

 

건조해진 눈에 넣을 인공눈물을 찾느라 핸드백을 뒤질 때까진 뜬금없이 동태탕에서 기억이 멈추게 될 줄은 몰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이 기억을 돌려서 생각할지를 몰라서 매번 내 기억은 동태 한 조각을 더 건져주던 그 순간에 멈춘다. 나를 챙겨주는 무심한 손길이 그저 좋았나 보다.

 

나이를 이만큼 먹도록 살았어도 경험해보지 못한 게 많다. 그래서 많은 것을 유추하고 상상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실제로 가보지 못한 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돌아 나오기만 한 내게 삶은 부딪히지 않고 피해서 간 시뮬레이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걸음도 더 나서지 못하고 다시 돌아서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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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에 통영에서 산 반건조 생선을 오늘 구워 먹었다. 역시 돔은 맛있다. 살짝 말린 반건조 생선의 쫄깃한 식감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며칠 전부터 여태 먹을 만큼 많이 산 꼬막도 조금씩 꺼내서 살짝 데워서 양념장에 무쳐 놓으니 상에 좋아하는 해물로 가득하다. 아쉬울 때 종종 먹는 해초 무침은 꺼낼 필요도 없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50년 넘게 바라보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을 먹으면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정말 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다면 그 사무치는 감정을 어떻게 달랠지 모르겠다. 어제 왕복 500km 이상의 거리를 운전하고 그 동네에 떨어져서 지인 만나서 밥 한 끼 먹고, 간단하게 안부만 묻고 돌아오면서 그냥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기 아쉬워서 통영의 마트에선 당연한 듯 파는 손질해서 말린 반건조 생선을 두 팩 샀다. 

 

오늘 낮에 그걸 구워 먹으며 내가 어제 달린 길이 꿈이 아니었음을 확인한다. 쉽지 않은 걸음이었지만, 잘 다녀왔다. 더 일찍 나서서 바다도 보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산책도 하고 종종 찾아가던 길고양이 안부도 챙기고 하룻밤 묵고 왔으면 좋겠다. 혼자 나서니 어두워지는 순간 마음이 스산해져서 돌아갈 길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조만간에 풍화리 친구 만나러 또 다녀와야겠다. 숨 쉬듯 늘 평온하게 내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던 귀한 인연들이 이렇게 아쉽고 그리울 줄이야.....

 

산청 지나기 전에 남 선생님께도 기별을 넣어서 잠시 뵙고 오면 어떨까, 어제 함양 산청 구간을 달리면서 남 선생님 생각도 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도 쉽게 묻지 못하는 내 마음이 오그라들어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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