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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12. 17

by 자 작 나 무 2024. 12. 17.

2024-12-17

 

딸이 오늘 처음으로 운전학원에서 운전 실기 수업을 듣고 왔다. 어땠냐고 물었더니 이래 가지고 자기가 운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암담하다고 한다. 오늘 처음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해줬지만,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내일은 낮에 연습하면 조금 나을지도 모른다고 격려해 줬다. 

 

내가 운전을 배운 90년대 중반엔 그 당시에 면허 따는데 100만 원쯤 들었다. 법정 이론 이수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실기 수업도 꽤 많이 듣고 운전 연습도 상당 시간을 투자해서 꼼꼼하게 배웠다. 요즘은 그에 비하면 어떻게 저렇게 해서 운전 면허를 남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술하게 대충 해서 면허를 따는 것 같다.

 

어렵고 엄격하게 배운 덕분에 면허 따고 바로 운전해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1종 보통으로 딴 면허를 달리 쓸 일은 없다. 수동으로 된 차를 운전할 일도 없다. 나처럼 1종 면허나 수동으로 운전 배워봐야 쓸 일도 없다며, 딸은 2종 자동으로 선택해서 쉽게 면허를 딸 것으로 예상한 모양이다.

 

과연 내일 학원에 다녀와서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 운전을 배우고 차를 몰고 다니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동시에 위협하는 큰 사고로 이어질 여지가 있으니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내가 면허 따던 그 시절처럼 좀더 엄격한 교육 과정을 꼼꼼하게 거친 다음에 면허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는 게 사회적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교통법규나 기본 규칙도 모르고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온라인으로 풀어보고 찍어서 커트라인만 넘으면 필기 시험 합격이다. 필기시험을 위한 기본 교육도 없이 안전교육 몇 시간이 전부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싶다. 

 

운전 실기도 오늘 2시간, 내일 2시간, 총 4시간으로 끝난다고 한다. 4시간 운전 실기 수업을 끝으로 바로 시험을 본다는데 그렇게 해서 합격한다고 한들 어떻게 바로 운전할 수 있을까...... 그 정도면 심장이 오그라들어서 내 손과 발이 주범이 되어 `자동차가 무기화되는 현장에 자신을 몰아넣는 상황이 될까 봐 무섭겠다.

 

*

얼마 전에 사 놓은 것인지도 잊은 무 한 개가 베란다에 있었다. 냉장고가 작아서 넣을 자리가 없어서 베란다가 시원하니 거기 좀 내놓으라고 말하고는 나도 잊고 있었다. 딸이 운전학원에 가고 난 뒤에 무를 채 썰어서 무나물을 만들었다. 멸치육수도 조금 내서 국물을 자박하게 볶았다. 간도 심심한 게 이 맛에 나물 먹는구나 싶다.

 

딸이 계속 다이어트하듯 하루에 한 끼는 제대로 먹고 한 끼는 대충 넘기는 식으로 두 끼를 제대로 먹지 않는 바람에 음식 준비를 아주 가끔만 한다. 그렇게 먹으려고 애쓰더니 이젠 겉으로 보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쓸 나이여서 그런지 음식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게 줄었다. 내가 먹으려고 하는 콩 섞은 현미밥은 먹지 않는다. 오로지 흰쌀밥만 먹는다. 섞어먹을 잡곡류 중에 딸이 거부감 없이 먹는 찰흑미나 차조를 조금씩 사놔야겠다. 

 

 

*

도서관에 오늘 반납해야할 책이 있어서 반납하러 갔다가 국내 여행 책을 몇 권 빌려왔다. 중부 지방에 가본 곳이 그리 많지 않아서 생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남부 지방에 살 때도 꽤 많이 다녔지만 내가 가보지 못한 곳도 많다. 겨울이어서 아쉬움이 있지만, 책을 뒤적이다가 계절이 바뀌면 가볼 만한 곳을 메모해 두고 국내 여행을 종종 다닐까 싶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냈을 땐 눈이 커지더니 집에 돌아오니 가방 안에 든 채로 대기 상태다. 집에 오면 해야할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처럼 홀가분하게 놀 궁리만 할 수는 없다.

 

오전에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밖에 나갔다 오니까 조금 기운이 난다. 추워도 볕 좋은 날엔 낮에 종종 밖에 나갔다와야겠다. 

 

도서관 주차장에 주차할 곳이 없어서 건너편 컨벤션 센터 앞에 주차하고 가방 들고 차에서 나서는데 한 발 앞서서 어느 차에서 내린 여자가 뒤를 돌아보며 나와 눈이 마주치니 씩 웃는다. 내가 웃고 있어서 그랬을까?

 

우리의 목적지가 같다는 사실에 도서관 1층에서 지나치며 또 나를 의식하며 쳐다보고 웃어서 나도 멍하니 서서 안 보는 척하면서 쳐다봤다. 인상이 참하고 결이 고운 사람처럼 느껴져서 말을 붙여보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사람도 내게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몇 번이고 그렇게 쳐다봤을까?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고 인상이 선명하고 선해 보이는 사람이어서 다음에 또 마주치면 조금 더 활짝 웃어봐야겠다.

 

아주 오래 전에 딸이 세 살쯤 되었을 때, 동네에서 어떤 여자가 나를 붙잡고 친구 해달라고 말해서 그땐 몹시 황당했다. 내 딸 또래인 아들 손을 잡고 있어서 좀 이상한 듯한데도 거절 못하고 붙들렸다. 그 인연으로 그 사람이 살던 서른 평 넘는 주택에 놀러 가게 되었고, 그 집 식구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내게 집을 소개해서 얼떨결에 그 집에 2005년에 이사 들어서 2024년 1월까지 어언 20년을 살다 나왔다.

 

자주 왕래하며 속깊은 정을 나누는 이웃은 아니었지만, 딸이 기억나는 유년 시절의 기억부터 이사오기 전까지 고향집과 관련한 기억은 그 집에서 생겼으니 우리에게 그 집을 중매해 준 셈이다. (워낙 오래 살았던 집이어서 중개가 아니라 중매로 표현한다)

 

오늘 도서관에서 몇 번 눈 마주친 그 사람도 어쩌면 다음에 마주쳐서 인사를 나누게 될까..... 궁금하다. 나중에 쓰면 미리 알아본 것에 대해 증거가 남지 않으니 이 정도 기록해둔다. 그게 아니라면 내 풍부한 상상력으로 잠시 재밌었던 순간으로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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