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2
구직 급여만으로 버티기엔 물가가 너무 높고, 숨만 쉬고 밥 안 먹어도 그냥 나가는 돈이 꽤 많아서 이번 달까지 다섯 달 쉬는 동안 꽤 많은 돈을 그냥 썼다. 벌면서 쓰는 것과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실수한 걸 알게 된 그날은 24시간 금식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것에 집중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은 거실과 주방 정리를 했다. 이사한 뒤에 물건 정리를 딸이 해서, 어디에 뭣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체계없이 들쭉날쭉하게 정리한 것을 언젠가는 한 번 다 엎어서 체계를 갖춰야했다.
두 번째 정리를 하고 나니 이제 한 번만 더 손대면 끝나지 싶다. 눈 밑은 꺼지고 볼은 부어오르고, 어딘가는 물집이 잡혔다. 육체 노동으로는 살아남지 못할 체질인 것을 어릴 때 알았다. 약값, 병원비가 더 든다고 밖에 나가서 몸쓰는 일 하지 말라고 말리는 가족들이 앞다투어 말렸다.
앞으로는 어떨까? 역시 몸으로 힘 써서 돈 버는 일은 하기 더더욱 어렵겠다. 오늘 점심 때 약속 있다고 단장하고 나가는 딸이 실실 웃으며 밥 굶을 일은 없을 거라고 나를 달랜다. 우리가 한 달에 얼마나 쓰는지 지출 규모를 모르는 딸은 쉽게 말한다. 여태 벌어서 뒷감당 하느라고 얼마나 애썼는지 저도 나중에 돈 벌어보면 알겠지.
*
이틀 벌서듯 침묵 속에 얻은 건 정리된 주방을 보며 기분이 좀 나아진 것, 읽고 싶었던 관심사를 찾아서 꼼꼼하게 읽을 기회를 가진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 20대 후반에 내가 알게 된 그 사실만으로 이 삶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을 때, 그와 관련한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느라 눈이 멀 지경이었다.
이젠 그와 관련하여 정리된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내가 잘 알지 못하던 부분도 정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