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0
어지럽고 지저분한 뉴스를 제목만 보고도 역겨워서 가끔 속이 울렁거린다. 1980년대에 10대였던 나는 그 시절에 힘들게 산 어른들에게 빚이 많겠다는 생각 정도는 든다. 공권력에 맞서면 두들겨 맞거나 잡혀 들어가서 어찌 될지 알 수 없던 시절에 군사 정권에 맞선다는 건 쉬운 선택은 아니었겠다.
80년대 끝자락에 대학에 들어간 나는 수많은 시위를 목격하고, 종종 최루탄 가스를 피해서 시내에 나갔다가 늦게 하숙집에 들어가서도 눈물 콧물 범벅에 따가운 얼굴을 씻으며 분노하기도 했다. 공무원을 하려면 일절 거기에 연루되면 안 된다고 하도 신신당부한 부모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왜 그들이 거기에 참여하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부조리한 세상에 일찍 염증을 느껴서 이미 내 삶은 괴롭고 또 괴로워서 남들처럼 살아볼 의지도 없었다. 스무 살의 봄에 교정에 화사하게 핀 봄꽃은 어쩌면 그렇게도 화사하면서도 슬펐는지......
내 부모는 내내 조선일보만 구독하고, KBS 뉴스만 들었으며, 나에게 어떤 당 후보를 찍으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책에서 배운 것 외에 세상살이에서 느낀 것과 현실과 접점이 생기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얼개를 대략 이해하게 된 뒤에 이 부조리함은 내가 진저리 치고 무조건 외면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산다는 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거나 이웃이 어떤 고통과 슬픔 속에 죽어가도 나몰라라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천진난만한 아이일 때에 오히려 이웃의 고통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오래도록 그 고통이 내 것인 것만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이해관계를 떠나서 타인의 고통이 오히려 내 고통인 것만 같아서 그 괴로움에서 나를 분리시키는 게 더 어려운 때였다.
당장 쏟아지는 뉴스보다는 이 흐름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중간에 어떤 변수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현실과 사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흘러가게 바람을 품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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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세상은 그러하고, 이제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연말정산 자료를 준비하는데 이런 공적인 문서를 처리할 때마다 별것도 아닌데 신경 쓰인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국가 시스템 아래에 있는 거다. 돈을 벌면 세금을 내고, 물건을 살 때도 세금 내고, 그걸 얼마나 잘 냈는지 점검하는 때에 과연 우리는 이 자본주의와 국가 시스템의 공정함에 조복 하는가. 누군가는 뭔가 잘 피해 가고 더 많은 눈먼 돈을 벌겠지만, 그건 내가 생각할 바가 아니다.
어디에도 끈이 붙어있지 않을 때 회의하고 회의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해야한다. 환기하고 조금 맑은 공기가 들어오니까 머리가 맑아진다.
딸이 오늘내일 이틀 도로주행 연습하고 시험을 본다. 오늘 돌아오면 어떤 말을 쏟아놓을까. 딸이 좋아하는 흑미를 섞어서 새 밥을 지어놓고, 환기하고 청소하고 오후에 돌아올 딸을 기다린다. 내일쯤은 연말정산하러 이전 직장에 다녀와야겠고, 준비가 부족한 부분을 저녁에 마저 채워서 이 절차를 빨리 끝내버려야지. 직원이 많아서 그곳은 며칠 붐비겠다. 그간 본의 아니게 피해서 연락도 않고 얼굴도 비치지 않은 나는 드디어 그간 확 살찐 내 모습을 보여주게 되겠다.
사회생활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을 능력이 없다면, 살아가는데 유용한 지침을 배워서 그대로 살아야겠지. 잠시 맑아졌다가 머릿속이 하얘진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데 이런 시기마다 마음이 오그라든다.
1년 남짓 외계 행성에 이주한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앞으로 이 외계 행성에서 삶을 이어갈 준비를 더 체계적으로 해야할 한 해가 될 것 같다. 작은 것부터 한걸음 한걸음 처음 삶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성실하고 또 성실하게 걸음마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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