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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5>

눈오는 지도

by 자 작 나 무 2025. 1. 27.

2025-01-27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길 위에 서 있어 보긴 처음이다. 그동안 딸이 이런저런 핑계로 가지 않는 체육관에 나도 덩달아 가지 않게 되면서 점점 쌓여가는 복부지방을 보면서 반성했다. 오늘은 기필코 가야지 생각했는데 폭설주의보가 내렸다. 뭔가 생기 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데 달리 날것을 먹을 게 없어서 오후에 개는 걸 보고 마트에 다녀왔다. 처음 나설 땐 마트에 다녀온 뒤에 바로 체육관에 운동하러 갈 참이었다.

 

 

날 것으로 먹을 수 있는 사과, 천혜향, 토마토를 샀다. 마트에서 나오다가 폭설주의보 내린 날에 눈이 어떻게 오는 것인지 처음 목격했다. 그간은 눈 온다고 하면 밖에 나가지 않으니 간혹 베란다 창너머로 잠시 보는 게 전부여서 이토록 길 위에 폭폭 내려 쌓이는 풍경을 본 적이 없다.
 

 

마트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서 길도 지도도 사라진 것 같은 풍경에 철딱서니 없는 아이처럼 함박 웃으며 카메라를 켰다.

 

집에 돌아와서 냉동실에 있던 계피호떡을 꺼내서 두 장 부쳐먹고 눈 오는 풍경을 처음으로 즐겼다. 

 

 

*

'눈 오는 지도'라는 시가 절로 떠오르는 풍경에 시를 꺼내서 읽고, 베껴 썼다. 아마폴라를 들으며 눈이 폭폭 내려 쌓이던 순간 그 아래 묻어도 좋을, 아니 그렇게 잊어야 할 것을 하나씩 꺼내서 눈처럼 희미해지는 길을 덮는다. 그대에게로 이어진 기억 속의 길을 덮는다.  내 마음에도 눈이 내려, 붙들 수 없는 시간 위에 덮이는 함박눈을 가만히 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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