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걸린 딸이 끼니를 챙겨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으니 하루에 두 끼만 먹는 딸이 입맛 없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조금씩 장만해서 같이 앉아서 밥을 먹는다.
이 즈음만 되면 골골 앓던 내가 말짱한 것은 찬바람 나고 일하러 다니지 않았던 덕분이다. 겨울만 되면 체력이 다하고 힘이 부치는 상태로 생기부를 쓰느라 진을 뺐다. 2018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겨울을 그렇게 보냈다.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솔직히 이렇게 쉬어보는 게 얼마나 마음 편하고 좋은지..... 늘 뭔가에 쫓기다가 잠 깨면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이었던 사실이 종종 너무 힘에 부칠 땐 악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울해져서 속이 부대낄 정도로 음식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책상 앞에 앉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괜찮아진다. 머리가 나빠져서 왜 힘들었는지 생각이 가다가도 돌아서고 끊긴다.
내일 아침에 딸이 먹을 새 밥만 안쳐놓고 푹 자야겠다. 명절음식이라고 따로 음식을 하진 않았다. 평소와 달리 만들어놓은 건 고작 식혜뿐이다. 감기 걸려서 아픈 딸이 기름진 것이 당기지도 않고, 국물도 그리 먹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때그때 먹고 싶다는 것을 만들어주면 될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것을 알았으면서, 그 일이 내 뜻대로 혹은 되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아쉬워하거나 애태운다고 더 좋을 일은 없다. 대전광역시에 지원한 시험이 붙었으면 오히려 우리 삶이 더 복잡하고 피곤해졌을 테니, 올해 새로운 기회를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야 옳다.
며칠만 지나면 또 세상이 달라질 거다. 새 바람이 불고, 내 생각도 바뀐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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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렇게까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빨리 가버리고 싶었을 거다. 꿋꿋하게 버티고, 딸이 잘 살아내도록 그저 내가 존재하기만 해도 된다. 그러니 더 참고 견디자.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