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31
대학 다닐 때 읽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책을 펴놓고 읽다 보니 옛날엔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부분이 하나씩 도드라져 보인다. 기원전 4세기 경에 플라톤이라는 인물이 대화의 형식으로 국가론이라는 책을 썼다. 20대엔 공감하지 못했던 내용이 눈에 밟혀서 잠시 멈춰서 생각한다.
플라톤의 국가론 제1권 정의의 이익 편에 소크라테스와 케팔로스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나누는 대화 속에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의 한 사람인 소포클레스에게 아직도 여자를 즐기냐는 질문에 소포클레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말 말게. 애욕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 지 오래되었네. 난 지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네. 마치 광폭하고 사나운 폭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느낌이네."
나이 들어서 욕망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내용이다. 호르몬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중년의 나이에 철학자들이 그 답변을 명언이라고 생각한다고 저자인 플라톤이 써놨다. 절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호르몬의 지배에 시달리는 시기가 아니므로 한결 쉽게 내 속에 있는 짐승을 다룰 수 있다. 적정 나이 이후에도 한창 젊을 때처럼 그렇게 호르몬의 지배에 시달리며 산다면 삶은 참 번거롭고 성가신 일도 더 많이 생길 거다.
때로는 지나온 순간의 감각과 감정을 그대로 박제해서 보관하듯 간혹 생각으로 품어볼 때가 있다. 20~30대였더라면, 그렇게 생긴 갈증이나 집착을 해소하기 위해서 뭐든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잠시 그리워하는 것으로 감정을 차단해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게 무한한 절제를 요구한다.
가보지도 않은 길, 서성이지도 못하고 생각만으로도 길을 끊어버리는 선택을 했다. 상대방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의 과정을 거치며 감정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걸음만 더 걸어도 그 길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돌아서야 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다 잠잠해질 거다.
마음이 허전할 때 옛날에 본 재밌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옛날에 봐서 뭘 봤는지 까마득히 잊은 것 같은 책을 한동안 다시 뒤적여볼까 한다.
며칠 아픈 동안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카페인 중독으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상태였는데, 몸이 너무 아프니까 그조차 마셔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 참에 커피를 끊어볼까도 생각한다. 잠시 약기운 돌 때 책상 앞에 앉았다가 책 몇 장 읽고, 일기도 쓴다. 약기운 돌 때 이대로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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