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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6>

어느새 짙어진 초록

by 자 작 나 무 2006. 4. 21.

 

저 아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만큼 자라는 동안 행여 내 눈길, 내 손길이 없으면 어떻게라도 될까 봐 그렇게 아이에게만 매달려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를 챙겨서 내려보내고 난 위에서 가만히 바라본다. 아이를 태우러 오는 노란 차가 와서 태워가는 것만 확인하면 집 안으로 들어와 버린다.

 

집 앞에서 배웅하고 오기 전에 나가서 기다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우리 사이에도 이만큼 간격이 생겼다. 그래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아이가 자란 것이다. 아이가 자랄수록 내 가슴에 빈 자리는 더 커져가는 것만 같다. 어느새 초록이 짙어졌다. 초록 앞에서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인다.

 

 

 

밀린 잠이나 오전에 실컷 잘까 했더니 하늘이 날 돕는구나.....  하필 오늘 옥상에서 방수작업한다고 부실한 부위를 두드려 깨는 망치질 소리. 이불을 뒤집어쓰면 뭐하나 소리가 들리는데.....  피곤해서 눈이 붙을 것 같은데 그래도 밖으로 나가라니 나가는 수밖에..... 근데 갈 데가 없어.ㅠ.ㅠ

 

 

 

봄날은 그저 나를 스치고만 간다.

 

2006/04/21 00:43

종일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오전부터 공연히 바깥에 쏘다니다 돌아와선 졸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영이 보라고 거실과 지영이 방에 각각 나눠서 내놓았던 책들을 다시 방으로 돌려놓는 작업을 했다.

 

저녁에 아이가 돌아올 시간 즈음엔 이미 나는 일을 시작한 다음이고, 겨우 저녁을 챙겨주고는 계속 아이를 방치하다시피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매일 같이 옆집 아이랑 밖에서 어둡도록 놀다가 들어와서는 심통을 부리곤 한다.

 

옆집 아이는 의외로 말이 거칠어서 가끔 그 아이들만의 대화에 어른이 끼지 않으면 자연히 지영이도 상스러운 말을 거침없이 하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우리 집에 와서 놀게 하면 집안에서 어찌나 떠드는지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방해가 되니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서 놀겠다는 걸 말리지 않고 두곤 하는데 슬슬 걱정이 된다.

 

돈 번다고 이러다 애를 망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여태 딱히 다른 일을 하지도 못하고 힘들게 살아온 것이기도 한데 이젠 어느 정도 자랐으니 내가 밖으로 나돌며 하는 일이 아니면 그럭저럭 아이도 잘 견뎌줄 것이라는 생각에 의지를 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지영이는 어쩐지 마음이 겉도는 것 같아 보인다.

 

  

몇 주째 주말에도 쉼 없이 그 학생들과 씨름하듯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더 그런 것 같아 오늘은 지영이 책장을 공부방으로 들이고 지영이 책상도 들여놓고 어떻든 저녁 시간의 일부라도 함께 보낼 수 있게 길들여 보려고 했지만, 단숨에 바뀔 상황은 못 되는 것 같다.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서 주말엔 피곤해도 어디든 데리고 나가 바깥바람을 쏘이게 해주려고 했는데 시간도 체력도 따라주지 않고 나도 많이 지쳐있다.

 

답답한 집안에서 뭔가 변화를 주려니 별 뾰족한 수가 없어 고작해야 책상 배치를 바꾸거나 물건의 배열을 다르게 하는 정도다. 아이도 그렇겠지만 내겐 뭔가 획기적으로 심리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계기가 필요하다. 넓어져서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집 안도 이젠 답답하고 퀭한 느낌으로 바라보게 된다. 답답한 마음은 다시금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 마음을 던져둘 곳이 이 곳뿐이라니.... 이곳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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