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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6>

4월 19일

by 자 작 나 무 2006. 4. 19.

 

 

경남 고성군 무이산 문수암에서 내려다본 풍경

 

이불속에서 펑펑 울고 머리맡에 화장지가 수북하게 쌓인 뒤에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조금만 울면 코가 막히고 목도 막혀서 오래 울지도 못한다. 오래 울다간 호흡곤란으로 119에 실려 가야 할 지경이 되니 어지간히 울고 나면 어떻든 내 감정을 수습하고 울음을 멈춰야만 한다.

 

술도 잘 못 마시고 실컷 울지도 못하니 감정이 북받칠 땐 뭔가 가라앉힐 비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내 눈물이 나 아픔에 스스로 침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대체로 슬픔에 깊이 빠져들었다가도 빨리 헤어 나온다.

 

그 암담한 기분은 몇 주간 쌓인 피로 때문에 더욱 부채질 된 것일지도 모른다. 반가운 전화 한 통, 같이 재즈댄스 배우기로 했던 팀 중 제일 친한 샘의 전화다. 거의 학원이나 비슷한 일에 종사하는 우리랑 시간대가 맞지 않아 결국 그 일은 무산되고 말았다. 뭔가 또 핑곗거리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얼굴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1주일에 두번씩 낮에 만날 일이 생겼다. 내가 좋은 사람은 언제 보아도 좋으니 이유가 무엇이거나 난 무조건 좋다고 했다. 눈이 잘 안 떠져서 거울을 보니 눈이 부었다. 오늘 시험 치는 학생에게 전화를 해보려고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이 아침에 음식을 잘못 먹어 배 아파서 시험을 잘 못 쳤다는 보고다. 다행히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거의 100점인 것 같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별것 아니어도 그 점수 때문에 내 생계가 오락가락하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창밖은 잔뜩 흐려져 있고 밖에 좀 걸으려니 황사가 걱정이 되어 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차라리 조용히 방 안에서 궁상을 떠는 게 나으려나.

 

어젠 괜히 아침부터 병원 쫓아다니고 시장보고, 할인 판매하는 옷가게 기웃거리다 공연한 지출을 해서 오늘은 어지간하면 밖에 나가지 않을 참이다. 청소하고 잠시 한숨 돌릴 시간은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또 늘어진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혼자 우울했다가 즐거웠다 하는 걸 보니 조울증인가. 음악이나 실컷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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