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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6>

진짜 행운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by 자 작 나 무 2006. 4. 17.

토요일 오후 학생들이랑 한의원에 다녀오는 길에 로또 복권을 구입했다. 지영이를 비롯하여 그 학생들 둘이 차례로 번호를 대략 찍어서 5,000원어치를 샀다. 무슨 대단한 기대를 하고 산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아직도 벗어내야 할 굴레가 많은 나로선 가끔 생각지 못한 보너스가 있어 줬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걸 사면서도 4등쯤이라도 걸리면 아이들이랑 밥이나 한 끼 맛있는 거 사 먹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마침 4등에 걸렸다. 당첨금이 5만 원 정도였는데 세금을 제하면 3만 원이 못 될 것 같다. 어제저녁은 그 돈을 받은 거로 생각하고 복권을 살 때 마음먹었던 대로 아이들과 저녁을 먹는 데 썼다.

 

어쩌면 저녁값이 더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즈음만 되면 다시 새달 회비를 받을 때까지 열흘 이상 남았는데도 슬슬 쪼들리게 되니 확실히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줄이게 된다. 3만 원 정도의 불로소득으로 뭔가 다른 알찬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마침 토요일 오전에 목욕탕에서 심한 현기증을 몇 번씩 느끼고 불안한 마음에 맛있는 걸 사 먹기로 마음먹었던 거다.

 

언젠가 한 번 4등 걸렸을 때는 그 돈으로 지영이 겨울옷을 사줬다. 이번엔 로또복권을 팔던 빵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애들이랑 밥 사 먹는다고 마음먹었더니 꼭 그만큼의 돈이 들어왔다. 오늘 친구랑 통화하면서 다음에 좀 더 큰 액수에 혹시 걸리면 그 친구가 좋아할 만한 일을 한 가지 같이 하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꼭 그렇게 복권에 또 걸릴 여지는 없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릴 적부터 친구였지만 그 친구에게 뭔가 해준 기억이 거의 없다.

 

눈먼 돈이 생기면 집에서 멀리 떠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그 친구를 빼돌려서 꼭 같이 좀 먼 곳으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 내가 그 친구의 내면까지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가끔 그녀의 특이한 사고방식이나 행동들이 원천적인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친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오랫동안 그녀의 삶의 한 언저리를 지켜봐 주는 것 그것뿐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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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더니 월요일인데 눈이 잘 떠지질 않았다. 오전 내내 이불 속과 컴퓨터 앞을 오가며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것 없이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전부였다. 고작해야 토할 것 같은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뜨거운 물 받아서 족욕하고 그 핑계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블로깅 한 것..... 이렇게 매일 하루가 채워진다면 내 인생에 남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릴 적부터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퍽퍽하고 고통스러운 아픔들이 끊임없이 있었다. 이제야 그 가시덤불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데 이것도 때론 과분하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손에 쥐고 있는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도 없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아직 상처로 남은 시간만 남아 있을 뿐인데 내게 더한 고통이 주어지지 않은 것에 그저 감사하단 생각을 하고 있다. 그간 힘들긴 힘들었는가 보다.

 

정말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정신적인 고통은 내 몫이지만 스스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때 결정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몇 번은 받았다. 그들은 내 가족이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직접적으론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가끔 그 생각을 하면 어떻든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나도 그 누군가에게 내가 받은 것만큼 이상은 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굳어진다. 어느 블로그에서 본 그 사태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내 계좌에서 겨우 몇만 원을 꺼내 부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덮어버리려 했는데 오늘 누운 자리에서 자꾸만 그 생각이 나서 답답해졌다.

 

이달 말까지 써야 할 생활비도 빠듯하게 잔고가 얼마 남지 않아 그 정도 성의 밖에 보일 수 없었다고 스스로 변명은 했지만, 로또복권 4등에 걸리고 보니 누군가 하늘에서 이렇게 욕을 하는 것 같았다.

 

"봐라.....네 씀씀이가 그것밖에 안 되니 딱 그만큼만 생기잖아!"

 

학생들에겐 꼭 돈이 많아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해놓고 나도 내 형편에 더 어쩔 수 없었다고는 말하지만,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게 뜻하지 않은 도움을 주셨던 그분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보세요..... 위에서 절 지켜보고 계신 분~ 아직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니 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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