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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4>

소화불량

by 자 작 나 무 2004. 2. 19.

나는 몹시 황폐하고 불안정한 상태다. 음악을 퍼서 소스로 넣던 것도 손을 한동안 뗀 후로 잊어버렸고 귀찮다. 게시물을 만들면서 더 보기 좋고 듣기 좋게 만드는 게 참으로 즐거운 일 중 하나였는데 그 작은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그 느낌을 되살리려 감각을 집중시켜도 좀처럼 되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메마른 우물처럼 습기는 있되 건조하다. 이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내다간 모든 것이 온통 잿빛으로 변할 것만 같다.

 

슬픔은 너무나 오래 불에 끓였다가 식혀서 진하게 농축되어 응고된 곰탕처럼 흐르지도 않고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봄이 되면 햇살에나 녹을지 녹아 흘러야 이 답답한 감정과 묵은 감정이 누룽지처럼 붙어 있는 가슴이 조금은 시원해질 것이다.

 

며칠째 소화불량. 먹은 것도 변변찮은데 신경이 곤두서 있는 데다 한 달이 넘도록 치료해도 낫지 않고 질긴 그림자 같은 감기로 매일같이 복용한 약에 속이 깎이고 상한 까닭일 것이다. 이럴 땐 으레 감당하기 조금은 벅찬 듯한 일을 하나 저지르는 게 상책이다. 그 뒷감당에 급급해 오래 묵은 것들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전 같은 치기나 열정이 바래고 퇴색되어 이제는 그조차 쉽지 않다.

 

봄에 피는 꽃은 긴 겨울을 언 땅속에서 꿋꿋이 견뎌야만 한다. 답답하고 춥다고 눈을 감아버리면 정말 피어나야 할 봄볕에도 눈을 뜰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내 인생의 혹독한 겨울을 그렇게라도 견뎌내야 한다. 더 상하지 않고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올 그날까지 견디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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