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일이 많으면 글이 도무지 써지질 않는다. 꾸준히 써오던 온라인 일기조차도 요즘은 손이 가질 않아 가끔만 쓰게 된다. 너무 많이 드러낸 것에 대해 주춤거림이기도 하고 어차피 이렇게 내 이야길 적나라하게 써놓은 것을 누군가 읽었다 하더라도 내게 크게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주로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은 힘들고 응어리진 감정들을 추스르고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픈 감정들이 클로즈업되게 된다.
곤궁함이라기보단 절대적인 가난 속에 살면서 내가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놓고 그 대가를 치르며 지내는 시간이 가끔은 숨이 턱 막힐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내 주머니에 없는 돈을 빌려달라 한다고 카드로 대출이며 현금서비스 아낌없이 빼주는 바보천치는 세상에 몇 안 될 것이다. 내가 그 희귀종에 속한다.
닳고 닳아도 살아가기 힘들다는 세상을 무르고 남의 부탁 거절 못 하는 어눌한 바보로 살려니 남들보다 더 힘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정말 몰라서 그랬을까..... 상상도 못 한 일이라곤 하지만 사람 말을 믿은 죄밖에 없다.
그것도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애타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간곡히 부탁하는데 내가 구해줄 수 있는 돈이 있음에도 해주지 않고 외면한다는 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결과로 말미암아 야멸차게 외면하지 못하고 그 말대로 한 내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일을 자꾸 곱씹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위태위태한 건강 상태가 더욱 악화할 것이다.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절대적 궁핍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그 돈을 내가 썼으면 필요할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 걸 어쩔 수가 없다.
그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빌려 갈 때는 쉽게 빌려 가고 돌려주는 건 생각지도 않는 것일까..... 물론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소설 같다. 여러 사람이 어찌 비슷한 시기에 다 힘들어진단 말인가..... 하긴 힘든 시기이고 힘든 상황이어서 나같이 어려운 사람에게도 돈을 빌려 쓸 생각을 했겠지만, 그래도 이가 맞물려지는 걸 보면 신기한 일이다.
그중 한 사람이 내일 당장 빌려 간 돈 일부를 부쳐줄 테니 계좌를 알려달라는 문자를 넣어서 계좌번호를 메일로 보냈지만, 사흘이고 나흘이 지나도 그 계좌는 계속 비어있었다. 꼭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가 나서 머리를 자르러 갔었다. 화가 나는데 어디다 대고 화를 낼 데가 없어서 어리석은 자신에게 결국 화풀이를 한 셈이다.
좀 더 세상살이에 유능해져야 한다. 이렇게 어리숙하게 살다가는 코만 베일 게 아니라 누군가 내 목도 베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일이 되었다면 상대도 내겐 그냥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며칠째 몸이 으슬으슬 춥고 시리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내일 해야 할 일을 해야 함에도, 피곤한데 잠들기가 싫다. 이대로 뭔가 머릿속에서 한 가지는 떨치고 깨져야 잠이 올 것 같다. 괴로운 생각들을 벗어놓기 위해 또 혼자 블로그에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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