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 생활에 대한 기억의 꽃은 단연코 하숙집에 대한 기억이다. 늘 열 예닐곱 이상의 하숙생들이 북적이던 곳이고 입학하는 날부터 졸업하고 대학원 다니면서까지 그 집에서 밥을 먹었으니 장장 6년이란 기간 동안 그 집을 드나들던 하숙생들을 겪었다.
철마다 하숙집을 바꾸며 이사를 하던 이들이 새로운 생활을 원했던 것과는 달리, 난 안정이 필요했다. 남의 집은 어디나 마찬가지니, 적응하기 나름이라 생각했고 내가 굳이 이사를 하지 않아도 학기마다 다른 학생들이 으레 들어왔기 때문에 생활은 늘 변화가 있었다.
1학년 2학기 즈음부터 친해진 고향 선배 언니와 같은 방을 쓰게 된 후로 줄곧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하숙생 리스트가 머리에 한둘 씩 떠오르면 살포시 웃음부터 난다. 내 룸메이트였던 혜경 언니는 키가 170이 넘는 장신이었고, 얼굴뿐만 아니라 유난히 성품이 고운 사람이었다. 다른 방을 쓰면서 같이 어울렸던 88학번 현숙 언니 생각도 간혹 나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전혀 연락이 닿질 않는다.
시험 기간마다 새벽마다 깨어 남학생들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도서관에 가방 세 개를 들고 자리 잡으러 갔던 생각이며, 사범대에 여자들뿐이라 남학생 구경한답시고 같은 과 여학생들이랑 공대 식당에 밥 먹으러 갔던..... 참 유치하면서고 알콩달콩 재밌었던 기억들이 가을 단풍 내리듯 기억을 금세 20대의 추억들로 물들여 놓는다.
커피를 너무 좋아하셔서 가끔 커피에 밥을 말아 드시던 하숙집 주인 할아버지.... 그리고 두 할머니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실까....? 4학년 마치고 졸업할 때 졸업 선물이라며 할머니가 해주신 예쁜 금목걸이..... 하숙집 식구들에 정든 것을 생각하면 그때도 떠나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그때 내 모습은 늘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렸었다. 꾸밀 줄 모르는 천성때문인지 게을러서인지 늘 긴 생머리에 청바지 티셔츠, 그런 차림이었다. 그 넓은 캠퍼스에서도 뭔가 찾지 못한 그 무언가를 갈망하는 깊은 눈을 가졌었던 것 같다. 가장 그리운 시절이 그때일 것이라고 한참 방황하고 힘들어하면서도 대학 시절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학생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수 있는 마지막이며 가장 꽃다운 나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나중에 분명 기억될 것이라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웃음을 지어 보였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어쩜 비슷한 생활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뭔지 맘에 안 드는 동아리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고, 말없이 혼자 캠퍼스 구석구석을 쏘다니며 산책하길 좋아했다. 미팅도 안 나가면서 교양학관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지나가는 남학생들 점수 매기는 유치한 일도 친구들과 서슴없이 했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그때 함께 했던 과 동기들이랑 말 안 듣고 은근히 반항했던 교수님들께 죄송하기도 하고..... 하숙집 식구들 모두 너무 그리운 날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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