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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4>

기운 빠지는 날... 그리고

by 자 작 나 무 2004. 6. 24.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목 안이 따끔거리던 증상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침묵의 미덕을 배울 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제 유난히 많은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반 이상은 받지 않고 그냥 닫아버렸다.

외롭고 아플 때는 누구라도 나를 찾는 이가 반갑고 좋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어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충 나를 안다고 전화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조용히 침묵 속에 잠겨 있고 싶었다.

 

평소에 몇 달씩 전화 한 통 안 하던 오빠까지 어쩐 일인지 안부 전화를 넣은 이상한 날이었다.

일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평소엔 내가 너무 외롭고 힘들 때 전화 한 통 없이 잠잠하던 것이

내가 너무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 플래쉬나 시계 대용으로 쓰던 휴대전화가 발발이 울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는 참 우습다.

며칠째 운동을 쉬었더니 다리에 힘이 더 빠진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도 힘들고 자꾸 누울 자리만 돌아 보인다.

누군가 죽이라도 한 그릇 끓여서 먹으라고 권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눈물 나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글을 써놓고 이불에 들어가 청승맞게 울다가

밥을 해서 한 그릇 먹고 목욕탕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갔다 돌아왔다.

그냥 이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내 삶에 큰 변화가 오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소소한 일상 속에 작은 일탈과 즐거운 생각들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가미함으로써

내 인생이 덜 지루해지길 바랄 뿐이다.

책상 위에 올려둔 거울을 보고 예쁘게 화장을 했다. 전혀 아픈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그냥 사는 거다.

속이 문드러지는 일이 있거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밖으로 나가선

사람들이 내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게 그냥 나도 스치는 바람같이

세상에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를 몰라도 좋을 사람이어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고

내겐 내 시야에 비치는 세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넓게 살아가려면 이 좁은 시야를 널리든지 하던 대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아야 할 것이다. 붉은색 립스틱을 발랐더니 생기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이런 내 모습에 익숙하지 않아서 다시 다른 색깔을 덧바르고 만다.

변화하고 싶으면서도 정작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가슴 떨리는 뭔가가 한 가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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