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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4>

외로움 그리움이 시가 되어

by 자 작 나 무 2004. 8. 27.


동심초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동심초 (설도 원시/ 김안서 역시/ 김성태 작곡)


 

참 좋아하는 노랫말 중 하나입니다. 이 가사를 쓰신 분이 안서 김억이라는 분입니다. 우리 근대 문학사의 앞에 등장하시는 분이지요. 그런데 이 글은 그 분이 직접 쓰신 것은 아니고 일종의 창작적 번역입니다. 원래의 글은 당나라 여류시인인 설도(薛濤, 770-832)가 지었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집안 출신인데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악적(樂籍; 일본의 유흥을 돋구는 게이샤(藝者)와 비슷한 것; 기생과는 다른 개념)에 올랐으며 어릴 적부터 시를 지을 줄 알았으며 문장이 뛰어나고 당대의 일류 문인들과 교류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그 사람이 떠나 버리자 평생을 수절했다고 합니다.

 

설도의 초상화

 

 

 

 

 

설도
중국 당(唐)나라 시인. 자는 홍도(洪度). 장안(長安)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로 옮겼고 후에 기생이 되었다. 총명하고 기지가 풍부하며 시작에 능해 원진·무원형(武元衡) 등 많은 선비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절구를 잘 썼으며 스스로 만든 붉은 종이에 섬세하고 감상적인 정취를 썼다. 이 종이가 <설도전(薛濤箋)>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애용되었고, 지금까지 전한다. 현재, 청두의 망강공원(望江公園) 안에 그녀가 종이를 떴던 설도정(薛濤井)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설도시》 1권이 있다.

위의 동심초의 원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춘망사(春望詞)

風花日將老,

꽃은 바람에 시들어가고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가네

不結同心人,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春望詞四首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

欲問相思處, 花開花落時

 

(手監)結草同心, 將以遺知音 (手監 = 攬 잡을 람; 잡다, 따다, 손에 쥐다)

春愁正斷絶, 春鳥復哀吟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那堪花滿枝, 번作兩相思 (번: 날 번 [番羽])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춘망사 4수
꽃피어도 함께 즐길 이 없고, 꽃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묻노니, 그대는 어디 계신고,
꽃 피고 꽃 질 때에.

풀을 따서 한 마음으로 맺어,
지음의 님에게 보내려 하네

봄 시름 그렇게 끊어 버렸건만, 봄 새가 다시 슬피 우네.

꽃은 바람에 시들어가고,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가네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어찌 견디리 꽃 가득 핀 나뭇가지,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

눈물이 주르르 아침 거울에 떨어지네,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번역: 류주환)


시심의 원천은 외로움과 그리움이 아닐까요?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인데 노랫말의 원시를 쓴 사람이 중국의 시인 설도라는 사실을 눈여겨 보지 않아서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워낙 한시를 좋아했었는데 수준이 안되서 한시는 짓지 못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슴에 맺힌 감정들을 승화시키는 것에 글이나 음악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가을 내내 저는 가슴으로만 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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