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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길 위에서<2012>

한산도에서 무작정 걷기 놀이

by 자 작 나 무 2012. 10. 15.




9월 29일

 

추석 전날, 아침 일찍 소매물도에 가기 위해 여객선터미널에 갔다.

주말에 9시반에 증편된 배를 타고 가려고 나섰는데 어쩐 일인지 주말 증편된 배가 없다.

시간표를 보니 다음 배가 11시에 출발한다. 2시간이나 터미널에 앉아 기다릴 수도 없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니 아쉬워서 아이랑 아이 딸과 함께 시장 구경을 갔다.

 

10시 반 정도 되어 여객선터미널 매표소에 가서 표를 사려니

태풍 볼라벤에 소매물도 선착장이 부서져서 배를 댈 수가 없어서 대매물도만 운항한단다.

2시간 기다린 것도 허사였다. 맥이 좀 빠졌지만 이른 아침 나섰다가

시내에서 2시간 헤매다 집으로 돌아가는 건 더 맥빠지는 일이라 가까운 한산도라도

다녀오기로 하고 표를 샀다.



 

 


 통영항 전경 /  통영항을 떠난지 25분 만에 한산도 제승당 항에 도착했다.

 


배가 도착하는 시각에 부두에서 한산도 해안도로를 도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얼른 버스에 올라타서 그 버스 종착지인 '장작지'에서 내렸다.

그리곤 마을 정자에서 준비해온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전에 한산도 장작지에 왔을 때는 연결되지 않았던 해안도로 공사가 끝났길래

그 언덕진 길을 너머 무작정 걷기로 했다.

 


우리가 걷는 동안 차가 두 대 정도 지나갔다. 차량 통행이 드문 곳이다.


 


우리가 걸으며 바다 너머로 길다랗게 바라보던 섬은 통영.

내가 살고 있는 미륵도의 한 언저리로 자주 산책가는 자전거 도로가 보였다.

 

 


 


 


벼가 노랗게 익어서 한창 내리쬐는 볕에 여물어져가고 있었다.

 



바람에 쓰러져 꺾인 벼를 주워서는 귀 뒤에 꽂고는 아이가 재밌다고 웃는다.

자기가 너무나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밥이 될 벼라서 꽃보다 좋단다.

 

 


한창 땡볕에 걸었더니 뜨거워서 잠시 버스 정류장 그늘에 앉아서 쉬었다.

좀 쉬었다 다른 고갯길을 넘으려는데 처음 탔던 버스와는 다른 노선의 버스가 지나가길래

뛰어가서 불러세워 탔다. 의항 마을이 종착지란다.




한산도에서 2대 뿐인 버스의 또 다른종착지까지 가는 길에 제승당까지 산 너머 가는 길을

기사분께 여쭸더니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방법이 있다며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저 숲 너머 바닷가에 있던 작은 마을 '문어포'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을 휘돌아 경사진 바닷가로

버스가 내달리는데 정말 아찔했다. 그 곳으로 가는 길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바닷가 다섯 개 마을

'친퀘테레'를 연상하게 했다. 지중해는 아니지만 남해의 작은 섬마을 바다는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고

한국적인 작은 어촌 마을들의 정취를 느끼며 산길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의항 마을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는 길찾아 제승당까지 가려니

산길에 있던 허름한 집에 묶어둔 개들이 짖는 소리가 너무 사나워 아이들이 질겁을 해서

다시 산길을 조르르 달려내려와야 했다. 그리곤 버스를 타고 들어왔던 길로 다시 걸어나왔다.

 

한산도 섬마을 버스는 배가 들어오는 시각 외에는 운행하지 않으므로 어지간해선

의항 마을 방면에선 버스를 타기 어렵다. 의항 마을엔 배가 하루에 세 번 정도 다닌다.


 


어느 작은 마을 어귀에서 우물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진짜 우물에서 물을 길어본 적이 없다길래

내가 아주 어릴 적 웃마을 공동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 길어본 경험을 자랑하며

힘차게 두레박을 훌렁 던져 두레박 그득 물을 길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몹시 신기해하며 아이들이 차례로 물을 길어본다. 하지만 3분의 1도 채우지 못한 두레박이 올라온다.

내가 단번에 해내는 걸 보고 쉬울거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몇번 해보고는 내 솜씨에

감탄을 한다. 나는 괜히 별 것도 아닌데 너스레를 떨며 재밌게 웃었다.



 

 


더운데 힘들게 여기 저기 걸어다닐 때는 힘들었는데 두레박으로 물긷기 체험은

너무 재밌다며 아이들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리곤 다시 길을 걸었다.

 


 

 


 

 


 

 


 

 


인적이 워낙 드문 길이니 길다가 이런 사진 찍기 놀이도 하며 길에서 깔깔거렸다.

 


 

 


깍아지른 듯한 비탈길에 철계단이 놓여져 있었다. 마음 같아선 저 길로 내려가

바닷가에 발 한 번 담그고 오고 싶었지만, 이미 몇 시간 길을 헤매며 걸었던 아이들이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하길래 사진만 찍고 말았다.

 

 


카메라로 담아내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풍경이 훨씬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시 장작지 마을 등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르막 한참 올라오다 지쳤던 아이들이 내리막을 만나자 신나게 뛰어내려온다.

 


 

 


 

 


공중부양 사진 찍기 놀이도 해본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를 뒤로 하고 여객선이 드나드는 항구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우리를 태우고 나갈 여객선이 한산도 앞바다로 들어오고 있다.

 

 




섬에 들어올 때는 '시.파라다이스' 호를 탔는데 돌아갈 때는 '뉴.파라다이스' 호였다.


 


아이들이 지쳐서 객실에서 잠이 들었다. 뉴파라다이스 호가 훨씬 객실도 넓고 좋았다.

 

 

 


 

 


 

 


통영항에 도착하니 출출해져서 아이 친구 윤하양이 우짜를 먹어보지 못했다 하길래 우짜를 먹으러 갔다.

사진과 함께 우리의 한산도 여행은 언젠가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