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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5>

역겹다

by 자 작 나 무 2005. 9. 21.

어젯밤부터 심한 날궂이를 한다.

돌아누운 등 뒤로 흘러나온 우울함으로 온 방이 축축해진다.

울지도 못하고 목구멍까지 차올라 맺힌 감정이 답답하다.

이럴 땐 외부와 소통 금지, 소통 불가 상태다. 빨간불이 켜진다.

이런 기분일 땐 그저 혼자 견뎌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벼랑 끝에서 뛰어내려 현실과 영원히 단절되고 싶다.

감정의 변화는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고정적인 것이 아니기에 지금의 이 기분이 절대적이라고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지나가 주기만을 바란다.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회오리바람처럼 시야를 흐려도 한때 스쳐 가주기만 바랄 뿐이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이 불편한 위장처럼 

머릿속도 마음 한구석도 구토 일보 직전.

왜 이렇게 일순간 내 인생이 역겹게 느껴질까.....

 

처방전이 없어도 약은 필요하다. 난 몹시 우울하고 지쳐있다.

몸이 지쳐서 우울해지는 것인지 우울해서 더 쉽게 지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힘든 건 사실이다.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눈이 빠질 것 같고

목 안이 답답하고 순간 숨이 컥 멎을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이런 상태가 오래가지 않기만을 바란다.

 

두통약일 뿐이지만 혹시 타이레놀로 우울한 기분이 잠시라도 가라앉아주진 않을까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머리가 무거워서 자꾸만 뒤로 넘어질 것 같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신경 쓰게 된 어떤 순간

그동안 속속들이 드러낸 내 유치한 인생의 진부한 이야기,

넋두리들이 얼마나 재밌는 구경거리였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도 아마 그래서 여태 여길 들어와서 이것저것 뒤져 읽고

그냥 가기 미안해서 답글을 붙였겠지.

내가 구경거리를 자처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 증거들이

더러 자물쇠를 차고 블로그에 그대로 앉아 있다.

남이야 뭐라고 생각하거나 아무 상관없다고 자신 있게 말해왔지만

더러 그렇지만은 못했던 모양이다.

 

내 마음을 상하게 했던 그의 말 한 마디, 실수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말로 인해 내가 생각지 못하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구경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이것은 공연한 피해 의식이다.

나중에 이 기분에서 벗어나면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나를 이해하는 듯 건네준 말들은

나에 대한 연민과 블로그를 구경한 대가로 지불된 

우정을 가장한 입발림이었겠지.

다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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