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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5>

빨리 이사가고 싶다.

by 자 작 나 무 2005. 9. 26.

잠에서 깬 딸이 울먹이며 엄마를 부른다. 자고 일어나 옆에 엄마가 없어서 옆 방으로 와보니 거기도 엄마가 없어서 바로 울먹이며 엄마를 애타게 부른다. 그렇게 깨워도 일어나지 않더니 내가 옆에 없어서 깼나 보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나갈 때마다 아이에겐 보고해야 한다. 잠결이라 그냥 나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애 두고 엄마가 도망이라도 간 줄 알 정도로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불러댄다.

 

어젯밤 이런 소동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곳으로 꼭 이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래전부터 이사할 만한 집을 물색하고 또 물색해도 전세금과 그나마 이사할만한 집을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제 겨우 납득했다. 다시금 월세를 내야 하는 집을 알아보다가 속이 체한 것처럼 거북하고 잠이 잘 오지 않아 어제 사 온 와인을 잔에 따르고 홀짝 다 마시고 빨래를 널어놓고도 잠이 오지 않아 또 한 잔을 따라서 마신 게 화근이었다.

 

그렇게 겨우 눈물을 꾹 참고 술김에 잠이 들긴 했는데 아침부터 계속 배가 아프고 아이를 보내고 골목을 달려 나가 교차로, 벼룩시장, 칠일장터 골고루 가져다 놓고 한 번 훑어내린 후 가능성 있을 만한 곳 메모를 한 후 이웃집 아줌마에게 같이 집 좀 보러 가달라고 부탁할 때까진 그래도 괜찮은 줄 알았다.

 

약속해놓고 정신을 차리려던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 메슥거리는 속에서 급기야 구토가 날 것 같았다. 누웠다 앉았다 눈알이 빠져나올 것 같은 통증에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온 방 안을 포복하듯 기다가 또 화장실을 갔다가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아침나절 냉수에 꿀물 타서 마신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정신이 반쯤 들기 시작했다.

 

아직도 거의 몸은 반쯤 알코올에 절인 느낌이 든다. 겨우 와인 한 잔이었다. 잔에 반만 채워 마시고 또 반을 마셨으니 그득 한 잔을 마신 셈이다. 그리고 곧 잠들어버려서 술 취한 느낌도 없었는데 아침에 깨고서야 술에 취한다. 이제야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지독한 숙취란 것이 이런 것이었다는 사실이.

 

술이 잘 받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어지간해선 폭음을 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양으로 폭음에 해당하는 머리 깨지는 숙취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다. 이젠 그나마 잠 안 오는 밤마다 한 잔씩 마시려던 생각도 싹 달아나버린다. 손도 오들오들 떨리고 속도 오들오들 떨린다. 오전에 전화해놓은 것 때문에 일단은 이사할 방을 보러 갔다 와야 하는데 다리가 떨려서 걸음이 제대로 걸어질지 걱정이다.

 

이사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곳은 아니지만, 보증금과 월세 액수를 맞추다 보니 전화 해볼 만한 집이 아주 드물게 한 곳씩 난다. 그나마 오늘 보러 가는 집은 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아직 덜 깬 술김에 하는 말이지만 로또복권 당첨되면 남해 독일 마을에 집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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