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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5>

골목 끝에서.....

by 자 작 나 무 2005. 9. 30.

 

 

 

아이야, 언젠가 우리 이 골목길이 그리워질 때도 있겠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희미해질 무렵 이 골목 안 한 모퉁이에서 추운 밤을 보냈던 겨울이 생각나면 서글픈 미소라도 지어볼까....

 

우리 이제 인생의 길 모퉁이에 막다른 길 같았던 이 골목 막다른 대문 안에 살았던 날들을 가볍게 기억하기로 하자. 밤늦게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아이는 울었다. 어제는 내가 그렇게 목구멍에서 피가 솟구치도록 서럽게 토해낸 울음으로 부족했는지 오늘은 아이가 한 밤중에 그렇게 아프게 울었다.

 

아이 엉덩이 깊숙한 자리에 종기가 말도 못하게 험하게 났다. 그 자리가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엄청난 통증을 모를 것이다. 이 집에 살면서 물이 안좋아서 그랬는지 종기 수술을 두 번, 세 번 받아야 했던 나로선 눈으로 보기만 하여도 아이의 상태가 얼마나 아플지 섬뜩할 정도로 느껴졌다. 너무나 심하게 곪은 자리라 그대로 재울 수가 없어 짜도 짜도 끝없이 나올 듯 많은 양의 피고름을 짜내는 동안 아이는 악을 쓰며 울었다.

 

"이걸 다 짜내야 새살 돋는단다. 아픈건 알겠지만 좀 참아보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이를 달래가며 종기를 짜냈다. 도무지 보기 안쓰러워 더는 못하겠다 싶을 만큼 짜내고 아이를 씻겨 눕히니 잠든 얼굴에도 눈물이 맺혀 흐른다. 저 어린 것이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종기가 날 때마다 그렇게 아파서 밤잠을 못 자고 열이 나서 울다가 울다가 병원에서 수술하고 와서도 애를 먹는 것을 익히 보아왔던 아이라 자기도 병원에 가면 칼로 상처를 찢을 것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종기가 그렇게 났다는 말도 못하고 앓다가 잠들 무렵 이상하게 일그러진 아이의 표정을 보고 옷을 벗겨보니 엉덩이가 이미 보기만 해도 끔찍할 만큼 곪고 부어있었다. 며칠 이사 때문에 정신이 팔려 있어 아이의 몸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관심있게 관찰하지 못한 내 탓이다. 아이에게 관심을 그 만큼 가지고 이런 저런 대화를 했더라면 은연중에 말을 했을지도 모르는 것을 어젠 내 감정에 지쳐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아이를 부둥켜 안고 우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이는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다 못해 자기가 아픈 것을 말도 못하고 숨겼던 모양이다. 얼마나 울었던지 잠든 아이 얼굴이 퉁퉁부었다. 가슴이 아린다. 내일 병원에 데려가서 다시 찢어 짜내고 봉합하면 수일 내로 낫기는 하겠지만 여태 이런 집에서 고생시킨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이야 달리 고생한 것이 없었다 해도 혼자 있는 것을 불안해하는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어디론가 엄마가 사라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울부짖으며 몇 해를 익숙해지지 못하여 애를 먹지 않았던가.

 

그래서 난 아이를 안고 이사가는 것에 대해 말할 때마다 꼭 그렇게 말하게 된다.

"지영아... 우리 이제 집 안에 화장실 있는 곳으로 이사간다..."

힘들게 살아냈던 시간들..... 나중엔 추억으로 더듬을 땐 환하게 웃고 찍은 사진들만 보고 그 순간들만 진하게 기억하고 싶다. 어두운 저 골목 끝에서 수없이 찾아들었던 불행한 날들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희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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