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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5>

10월 9일

by 자 작 나 무 2015. 10. 10.

종일 낯선 사람들 속에 있었다. 그래도 곁에 딸이 있어서 피곤한 줄 몰랐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기운을 뺏기지 않고 내 기운으로 몇 시간씩 다니려면 꼭 필요한 것 외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딸이 뭘 하면 즐거워할지 그것만 신경 쓰고 딸만 쫓아다녔다.

 

오래전부터 오늘은 진주 유등축제나 남해나 섬진강... 지리산 등등 딸과 함께 동행한 가을여행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날부터 어디든 가기 싫다고 고개를 흔든다.

 

그냥 혼자 갈까, 아쉬운 대로 시간 내주는 친구랑 갈까 하다가 그래도 사흘 연휴 중 하루는 딸이랑 함께 어디든 나가고 싶었다. 결국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포기하고 딸이 좋아하는 쇼핑몰에 갔다. 아웃렛에서 이 가게 저 가게 딸이 가자는 대로 따라 들어가서 나올 땐 손에 딸이 쓸 물건을 산 가방을 들고 나왔다.

 

몇 달 놀면서 곶감 꼬챙이 빼먹듯 살림을 허술하게 산 탓에 내 물건은 불안하여 하나도 사지 못하고 딸이 예쁘다 갖고 싶다 하는 것은 그래도 보기 좋으면 사주고 주머니를 털려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젠 이렇게라도 함께 다닐 수 있는 시간이 갈수록 드물어질 것이 명백하니 하루라도 이렇게 함께 다니며 뭔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인도 음식점에 가서 카레와 난을 맛있게 먹고, 3D로 영화 '마션'을 재밌게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이 생긋생긋 웃으며 거울 앞에서 새로 산 옷을 입어보고, 새로 산 가방을 어깨에 둘러보고 신발을 꺼내서 신어보며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이다. 이유 없이 조건 없이 마냥 퍼주고 싶고, 마냥 해주고 싶은 대상이 있어서 감사하다.

 

오늘은 종일 수많은 쇼핑객에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며 몸은 피곤했어도 나는 내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