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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5>

주말 먹거리

by 자 작 나 무 2015. 12. 14.

"내일 장 보러 갈까? 아니..... 내일 마트 쉬는 일요일이네. 지금 마트 갔다 올게."

생수나 화장지, 세제 등 들고 오기 무거운 것은 인터넷 마트에서 주문해서 충분히 준비해두었지만 직접 가서 보고 골라와야 할 종류의 식자재들을 사러 갔다 와야 했다.

 

며칠 전 생목살 구이를 맛있게 먹고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맛나더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 먹고 싶다는 말이다. 해지고 저녁 늦게 마트에 갔더니 다음날 쉬는 일요일이라고 장 보러 온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마트 직원이 마이크에 대고 다음 날 쉬니까 더 많이 사라고 부채질을 한다. 뭐라고 하거나 내가 필요한 것만 사면 된다 생각하고 우선 딸이 먹고 싶다고 주문한 것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정육 코너로 향하다 보니 꼬막이 눈에 띈다. 가끔 생새우나 전복도 싱싱한 것이 나오면 가져가서 구워 먹거나 쪄먹기도 한다. 시장에 가지 않아도 더러 싱싱한 것을 마트에서 살 수 있을 때도 있다.

 

꼬막 한 팩을 장바구니에 넣고, 양념장에 넣을 쪽파도 한 단 담았다. 생목살을 몇 덩이 담아서 가격표를 붙인 다음, 같이 구워 먹을 버섯을 골라 담고 쌈무도 담았다. 장바구니가 뭔가로 가득 차서 제법 무거워졌길래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에 장바구니를 올려놓으려는 순간,

"국산 냉장 삼겹살 100g에 천 원, 국산 냉장 삼겹살 100g에 천 원입니다."

뒤를 휙 돌아봤다. 사람들이 정육 코너로 달려간다. 나도 생각 없이 그 말에 이끌려서 다시 계산대에서 제일 먼 정육 코너까지 쫓아갔다. 줄을 섰다. 어쩐지 그 순간 삼겹살을 사야만 할 것 같았다.

 

앞에 선 분들이 이상하게 많은 양의 삼겹살들을 쓸어가듯 담아간다. 다 사 가버릴까 봐 조마조마해진다. 가만히 서 있는 나를 제치고 다른 줄로 끼어들어서 앞다투어 삼겹살을 사는 분도 있다.

 

어쨌든 내 차례까지 왔다. 처음에 소심하게 담았던 목살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삼겹살을 달라고 했다. 그리곤 먼저 담았던 목살이 담긴 봉지를 슬그머니 정육 코너에 내려놓고 왔다.

 

생목살도 만만찮은 가격이라 많이 담진 않았는데 깜짝 염가판매의 구호에 혹해서 1kg이 넘는 양의 삼겹살을 샀다. 딸이랑 둘이서 평소에 먹는 양보다 훨씬 많다.

 

계획에 없던 걸 많이 샀지만 뭔지 모르게 횡재한 기분이다. 더 무거워진 바구니를 들고 채소코너를 지나는데 이번엔 1,980원 하던 시금치를 한 단에 천 원씩에 준단다. 잽싸게 두 단을 봉지에 담았다. 냉장고에 잠자고 있는 이미 사 둔 시금치가 나를 흉보는 것 같았지만 아줌마들이 다 집어가기 전에 나도 적어도 두 단은 담아야 했다.

 

그다음엔 처음 생각과는 달리 눈에 띄는 대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마구 담아서 계산했다. 준비해온 시장 가방 두 개가 넘쳐서 지갑을 담아온 에코백까지 세 개를 채워서 주렁주렁 들고 갔다.

 

응답하라 1988을 보는 날만은 거실에서 함께 TV를 본다. 그 외엔 TV를 켜지 않는다. 딸이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는 동안 시금치 두 단을 다듬어 씻어 데쳤다. 시금치를 무치고 보니 살짝 간이 짜게 되었다. 딸에게 한 입 먹여주며 간을 보라 하니 역시 짜다 한다. 남은 시금치 한 단을 마저 손질해야 했다. 결국 시금치 세 단을 다 무쳤다. 그래도 단이 크질 않아서 데쳐놓으니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다.

 

다음날 삼겹살 먹을 때 같이 먹겠다고 콩나물도 한 봉지 양 많은 걸 데쳐서 무쳤다. 이번엔 고춧가루도 듬뿍 넣고 살짝 맵게 무쳤다. 딸이 아삭하게 콩나물 씹히는 맛이 좋다며 생긋 웃는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 뭉근한 불에 오래 쪄서 식감이 탱글탱글한 계란찜도 완성되었다. 다음 날 아침에 삶아 먹을 꼬막도 소금물에 담가 스테인리스 대야를 씌워놓았다. 꼬막은 달리 해감을 시키지 않는다지만 삶아서 펄이 나올까 봐 신경 쓰여서 급한 것 아니기에 해감을 시키기로 했다.

 

스테인리스 대야를 씌워놓은 것이 뭐냐고 딸이 묻길래

"꼬막은 어두워야 속에 있는 걸 잘 토해낸다길래 덮어줬어....."

"꼬막도 예민한가 봐....."

딸이 한 말이 웃겨서 '예민한 꼬막'을 먹게 되었다고 한참을 킥킥거렸다.

 

다음 날 아침 딸이 깨기 전에 그 예민한 꼬막들을 삭삭 문질러 씻고 헹구기를 여러 차례 한 다음 끓는 물에 넣고 국자로 휘휘 돌리며 몇 번 저어서 식감이 좋을 만큼 적당히 삶아냈다.

 

늦잠 자는 선수인 딸이 꼬막 삶았다는 말에 벌떡 일어난다. 그리곤 그 작은 뚜껑을 야무진 손으로 하나씩 다 따준다. 한쪽만 따놓은 껍질에 작지만, 살이 통통하게 오른 꼬막살이 꽉 차 있다. 이래서 제철 꼬막이 좋다는 모양이다.

 

양념간장을 하나씩 얹어주자니 꼬막들이 너무 잘다. 그래서 알들을 작은 숟갈로 파내어 그 위에 양념간장을 얌전하게 올려놨다. 다진 양파와 마늘, 파, 고추까지 고명으로 듬뿍 얹은 매콤 짭짤 달콤한 양념간장 맛과 어우러진 꼬막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머리끝까지 만족스러운 느낌을 준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따뜻한 밥과 함께 제법 양 많던 꼬막 장을 한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만들 때는 그렇게 손이 가는데 먹는 건 한순간이다. 제법 많은 양이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다른 반찬은 손도 대지 않고 꼬막만 내리먹었다. 어찌나 맛있었던지 다음에도 얼마든지 꼬막을 사다 삶아주기만 하면 껍데기는 딸이 까주겠다 한다. 양념장 만들려고 산 쪽파가 시들어지기 전에 다시 시장 가서 실한 꼬막 한 소쿠리 사다 삶아 먹어야겠다.

 

우리 모녀는 맛있는 거 함께 먹을 때 행복하다. 음식은 정성이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을 함께 할 때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