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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5>

안녕하세요.

by 자 작 나 무 2015. 12. 16.

'네.... 저는 안녕합니다.' 그런데 그러시는 댁은 뉘신지? 저는 모릅니다. 그저 낯섦에 화들짝 놀라기부터 합니다. 아무래도 쪽지나 낯선 분과의 카톡은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아요. 고백할 것이 있어요. 맨날 짝사랑만 하다 죽을까 봐 한 번은 꼭 한번은 이 굴레에서 벗어나서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었어요.

 

작년 11월에 '낯선 남자에게 말 걸어 보기'라는 걸 나름 목표로 정했었어요. 카페에다 공언하고 꼭 그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지요. 11월 마지막 날 그분께 쪽지를 보냈어요. 그 전에도 언젠가 쪽지를 보낸 적이 있었어요. 친구라도 하면 어떻겠냐고 애원하듯 자신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분은 아주 관심 없다는 듯 거절을 했지요. 그 작은 상처와 난감한 기분이 잊히는데 몇 달이 걸렸는지 몇 년이 걸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쪽지를 보낼 만큼 뻔뻔해졌어요.

 

제 블로그에 몇 년 동안 꾸준히 와서 제 글을 읽고 가는 분이었는데 단 한 번도 댓글을 달지 않고 항상 그냥 와서 열심히 읽고만 가는 분이었어요. 그분의 블로그가 잠시 열려 있을 때 보니 참선을 하며 나름 삶의 목표를 어딘가에 두고 뭔가를 찾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그 여행을 이미 끝낸 사람이길 원하지만, 그래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부분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를 갖고 싶었더랬지요.

 

그 사이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작년 11월에 두 번째 쪽지도 거절당하고 올봄에 저는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세 번째 쪽지를 보냈답니다. 이번엔 전과는 다른 답이 와서 이메일로 가끔 안부 편지를 주고받곤 했어요. 나와는 다른 언어로 편지를 써서 다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 호감을 갖는 성향을 가진 저에겐 그동안 혼자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환상 속의 그 사람과 실제 그 사람과의 차이를 느낄 수가 없어 마냥 좋기만 했지요.

 

몇 해 동안 그 사람의 허상을 만들어 이런 사람이기를 바라며 그 사람이 내 블로그에 다녀간 날은 어쩐지 설레고 기분이 좋았어요. 잘 지내시는구나 생각하며 안도하고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사는구나 생각하며 흐뭇해했어요. 그리고...... 꽤 많은 이메일이 쌓인 뒤에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억지로 우겨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졸랐어요. 반응이 없는 그를 뒤로 하고 어느 주말 아침 일찍 서울 가는 버스를 탔어요.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울에 와 있노라고 잠시만 얼굴 보자고 조르는 문자를 보냈지만 그는 시간을 맞출 수 없다며 박물관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몇 시간 뒤에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어요. 갑자기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그 사람이 말해준 전철역으로 갔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어요. 나한테 알려준 역과 자신이 기다리고 있던 역이 다른 곳이었어요. 아주 진땀이 나도록 지하철 역 주변을 걷고 지치고, 또 지친 다음에 다시 알려준 곳으로 가서 어렵게 그를 만나게 되었네요.

 

이유도 모르고 오래 짝사랑하던 사람을 본다는 것은 그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마냥 좋기만 했어요. 그렇게 잠시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피곤한 상태로 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이 길을 어떻든 들어섰으니 조금은 더 가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쩐지 첫 만남에서부터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세 번을 연거푸 그 긴 그리움을 채우러 달려갔다 오기를 반복하면서도 피곤한 줄을 모르고 길 위에 수많은 시간과 눈물을 뿌리며 한 철을 보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았고, 생업에 쫓기느라 누굴 만날 시간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누군가 만나겠다고 글을 올려놓았더랬지요. 너무 외로워서 누구든 이야기할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네요. 나처럼 말이 통하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네요.

 

그런데..... 그는 내 눈높이와는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고, 그의 세계는 집과 생업을 위한 일터로 한정되어 있어서 내가 경험하고 보고 느끼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피상적인 추측 외엔 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어떤 공감대도, 어떤 즐거운 시간도 함께 만들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시간은 내가 많으니 그 먼길 마다하지 않고 매주 그의 얼굴을 겨우 두세 시간 보겠다고 5시간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한 시간 이동하고 또 한두 시간을 기다리기 일쑤였어요. 그는 미안해하고 고마워했지만 내 생각과 그의 실체는 상당히 다른 사람이어서 그 인연을 길게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처음 만났을 때 직감했더랍니다.

 

하지만, 내 평생 처음으로 먼저 말 걸어서 만나자 했던 사람이니 어떻든 3번은 그 만남을 채우고 싶어서 끝이 보이는 길을 세 번을 달려갔어요. 집에 돌아와선 그 허전하고 아픈 느낌을 온 가슴으로 앓다 보니 몸도 시름시름 아파지고 그 매듭을 어찌 지어야 서로에게 덜 아플지를 생각하느라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마음을 가다듬고 모든 것을 원점에 돌려놓는 것은 내 욕심만 내려놓으면 아주 쉬운 일이었어요. 난 아무나 만나서 정들고 시간을 채우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는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닌 데다 그의 좁은 생활 반경과 꽉 막힌 생활이 내 숨통도 틀어막는 것 같아 도무지 안될 것 같았어요. 그는 확연히 여태 보아온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내게 맞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한여름 열병 같은 여행을 마치고 보니 이젠 누구에게도 함부로 인사를 건네지도 받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누군가가 기대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실망을 안겨주게 될까 봐, 혹은 내 눈에 비친 모습이 그 사람의 실상이 아니라 자신 만든 도깨비 같은 허상일까 봐 내 눈은 당분간 믿지 않기로 했어요.

 

사랑이 하고 싶었나 봐요. 그가 내가 기대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도 비슷한 사람이기만 했어도 마냥 좋았을 것 같은데 그는..... 도무지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생활의 사슬에 자신을 묶어놓고 불평불만에 시들어가는 모습으로 나를 안타깝게 하고,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일부만 볼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그런 사람을 내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조용히 그 인연을 닫아야 했습니다. 내 눈높이보다 아래에서 더 좁은 세상만을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좀 더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끊임없이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던지는 저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야만 했어요.

 

언젠가 만나 짧은 시간이지만 깊이 사랑했던, 20대에 가까스로 만났지만 금세 세상을 떠난, 그 사람처럼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삶을 즐기고 관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내 마음 전부를 열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바라지만, 기대하지 않고, 가벼이 스쳐갈 인연을 만들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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