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지영이 합숙소인 대학 기숙사에 보내놓고 계속 신경이 쓰여서 전화오기만을 기다렸다. 전화기를 걷어가서 저녁 늦게 내준다길래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건만 전화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줄줄이 문자가 들어왔다. 숙소가 너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단다. 집에서 제일 두꺼운 극세사 이불을 보냈는데 그걸 덥고도 춥다니 도대체 얼마나 추웠던 것일까.
수면바지 톡톡한 것 보내달라해서 어제 점심 시간 맞춰서 기숙사에 찾아갔다. 자기주도학습 특강수업 받다가 흰옷에 유성매직이 묻었다고 다른 옷도 갖다 달라기에 옷과 슬리퍼, 극세사 수면바지를 챙겨 갖다줬다. 마침 비도 내리길래 우산까지 싼 가방을 들려주니 하루에 영어 단어 100개 외우는 것 때문에 바쁘다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이 프로그램을 학부모가 모니터링 가능하도록 만든 Class123이란 앱을 깔고 거기 게시판에 오른 게시물 아래에 숙소가 너무 춥다하더란 댓글을 남겼다. 올해 처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 아이들 재우는 것 먹이는 것 부모들이나 진행자들이나 신경이 쓰일 것이다. 화요일 밤늦게 전화가 왔다. 화요일까진 자기주도학습법과 관련된 강의를 듣고 계획된 영어 수학 수업은 수요일부터라서 아직 여유있어 보였다. 단어 100개 다 외워서 만점 받았다고 자랑을 한다.
집에선 서른 개도 겨우 외우는 애가 틈틈이 백 개를 다 외웠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 낮에 이불 얇은 것 하나 더 가져다주러 기숙사에 들렀다. 찾아오는 학부모가 거의 없는 모양인데 집이 가까우니 신경 쓰여서 두 번째 찾아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오던 딸이 밖에서 나를 보고 달려왔다.
월요일에 보낼 때 안아주지 못한 게 마음 쓰여서 안아보자 하니까 애들이 본다고 싫다는 걸 억지로 껴안았다. 그러자 애가 긴장이 풀리는지 오늘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전에 한 영어 수학 수업은 고등학교 과정 선행학습을 안한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의 수업이었단다. 계속 그렇게 수업하면 자긴 거기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풀이 죽은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갈까하는 말까지 했다.
영어 쓰기 시간에 강사선생님이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로 진학하게 된 학생들을 편애하고, 시험쳐서 점수대로 아이들을 분류해서 차별대우하는 분위기였다며 분개했다. 더 이야기하면 속상할 것 같아 얼른 돌아왔다. 도대체 잘한다는 애들 뽑아서 데려가놓고 효율성없는 뻔한 수업 한다면 도대체 거기 보낼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진짜 미리 공부한 몇 명의 애들을 위한 수업이라면 정말 실효성없는 헛짓에 동참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시험 잘쳐서 운좋게 24명 그룹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 중에도 더 잘하는 애들이 있을 것이고, 학원이나 과외로 기초부터 그 이상까지 탄탄하게 다져진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 딸처럼 갑자기 고등학교 수준의 수업을 하면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애들도 있을 것이다. 조금 쉽게 시작해서 단계를 높이지 않고 처음부터 애들을 너무 과대평가하여 수준 높은 수업을 강행한 것이 주최측에선 최선이었을지라도 학부모 입장에선 어쩐지 답답하다.
실력있는 강사진으로 구성되었다고 자랑하시더니 첫날부터 집떠난지 사흘되어 긴장된 중3짜리 애들을 두고 성적순으로 불편한 말을 했다니 참 못 마땅하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오라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최선을 다해 쫓아가라고 하고 돌아와야했다. 내가 가르치느니만 못하면 정말 억울한 한 달을 보내게 되는 셈이다. 그렇지 않기만을 바란다.
* 조금 전에 Class123앱에 접속해보니 내가 댓글 남긴 게시물을 주최측에서 삭제해버렸다. 그리고 좀 뒤에 다시 들어가니 복구해놨다. 왜 그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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