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옷이 입고 싶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맵시나게 입고 싶다. 그런데 해마다 조금씩 붙은 나이살이라 하기엔 과하게 살이 쪄버려서 이젠 작년 가을에 입던 원피스도 몸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몸이 불어버렸다. 포털사이트 마다 링크 걸린 예쁜 원피스 사진에 혹해서 클릭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현실을 직시하고 창을 닫아버린다.
지금 나에겐 입을 옷이 없는 게 아니라 입을 만한 옷들이 다 들어가지 않을 만큼 살이 찐 것이다. 새옷을 계속 사댈 것이 아니라 체중을 줄이고 이 불어난 몸이 다시 옷에 맞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 생각없이 딸이랑 입맛대로 거의 매일같이 밤참까지 먹었으니 살이 안 찔래야 안 찔 수가 없었다. 딸이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아침밥을 급히 먹고 나가니 차려주고 먹는 것만 보고 나는 혼자 밥을 먹거나 아침을 먹지 않고 밤잠을 잘 못자니 다시 혼자 조용한 시간에 잠들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혼자 다른 끼니를 해결하고 학교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는 딸이랑 함께 뭔가를 같이 먹기 위해 밤참을 그리 만들었던가 보다.
어제는 장어구이를 해주려고 장어를 샀는데 아침에 느긋하게 그걸 먹고 있을 시간이 없어서 밤에 구워주기로 했다. 일 끝나고 10시 넘어서 밤참으로 장어구이를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어쩐지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서 그걸 같이 먹어야 어쩐지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 묘한 기분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결과적으론 사실이다.
요즘 공부하는 게 힘든 모양이다. 과목별로 익혀야 할 것도 많고, 진도는 따라가지만 세분화 하여 모르는 게 많아서 그걸 쫓아가려니 학교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과제까지 다 해내려니 예전처럼 편하고 느긋하게 보낼 시간도 없고 그게 너무 벅찬 모양이다.
한동안은 제 친구가 수학과외를 하러 우리집에 와서 같이 수학공부를 했는데 그 친구가 과외를 그만 둔 후엔 제 방에서 혼자 공부한다더니 뜻대로 안되니까 계속 불평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밤 12시 넘어서 수학 문제집을 들고 오더니 모르는 것 천지란다. 내가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도무지 수학문제를 풀어줄 컨디션이 안될 때 꼭 그런 걸 가져와서 봐달라고 하니 나도 화가 났다.
학교 갔다와서 내가 체력이 많이 떨어지기 전에 가져와야 제대로 도와줄 수 있는데 왜 그런 것도 좀 못챙기냐고 한마디 했더니 자기 전에 돌아누워서 혼자 소리도 못내고 운다. 곁에 누워서 '우리 아기'하면서 안아주니 그제서야 소리를 내어 엉엉 운다.
요즘 계속 5살이나 4살쯤 된 아기였으면 좋겠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여태 제 생활은 느긋하고 편안함의 연속이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예전처럼 그런 느긋함을 누릴 수 없고, 해야 할 것들이 계속 쌓이니 안할 수도 없고 그걸 하자니 너무 피곤한 모양이다.
다시 어려질 수 없으니 차곡차곡 하나씩 늦으면 늦은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냥 해나가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줬더니 울다가 눈물을 훔치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내 고등학교 생활은 어땠던가? 나도 별 다를바 없는 빡빡한 시절을 보냈다.
눈뜨면 도시락 두 개 싸들고 학교 가고 야간 자율학습 마치고 10시 넘어서 집에 돌아가서 또 공부하고 잤다. 너무 힘들 땐 '나는 공부하는 기계다, 사이보그다' 그렇게 자신에게 되뇌이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견뎌냈다. 그 옥죄어진 시간을 맨정신으로는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그걸 똑같이 내 딸이 겪고 있는 것이다. 피해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그냥 정면돌파 하는 수 밖에 없다. 욕심대로 다 안되어도 하는 만큼만 하자. 그냥 견디자 말했다.
외국가서 살면 이렇게 힘든 고등학교 생활은 안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말까지 했다. 엄마가 그런 능력은 없는 줄 알면서도 저도 답답하고 힘드니까 하는 말이려니 하지만 그냥 흘려들어지지가 않았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아이들이 감옥생활하듯 한창 좋을 나이에 고등학교 생활을 꼭 이렇게 해야만 경쟁에서 겨우 도태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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