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공부 때문에 학원 한번 다닌 적 없는 지영이는 또래 애들이 학원에 붙들려서 공부하는 동안 참 많이 놀았다. 그래서 영어나 수학의 기초가 그다지 탄탄한 편이 못된다. 시험 치기 하루 이틀 전에 벼락치기해서 그럭저럭 점수를 받는 정도 이상의 공부를 하지 않고 지냈다.
고등학생이 되어 전국 모의고사를 치면서 벼락치기 성적의 한계가 바로 드러났다. 일주일에 두어 번이라도 내가 붙들고 앉아서 영어나 수학 공부를 시키고 싶은데 혼자 한다며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날리고 있다.
9월 모의고사를 그럭저럭 봐서 정독실에 들어갔다. 독서실처럼 칸막이 책상이 있는 교실에서 따로 야간자율학습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이제 저녁 먹고 좀 있다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자율학습이 끝나고 늦게 돌아온다. 그 전까진 8시 넘으면 집에 와서 교복을 휙 벗어던지고 드러누워서 꼼지락거리다 밤참을 먹고 배부르다고 자버리거나 이런저런 잡다한 시간들로 때우곤 했다.
어제는 밤늦게 웬일인지 유리함수를 잘 못풀겠다며 가르쳐달라고 했다. 아주 간단하게 몇 가지 유형을 가르쳐주니 만족스러워했다. 학교에서 그 부분 연습문제들을 풀어보고 온다고 했는데 과연 오늘 약속을 지키고 올까?
오늘이나 내일 저녁쯤엔 수열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 앞에 배운 부분도 잘 못하면서 그다음을 넘어가면 어떨지 조금 걱정은 되지만 시험 범위에 맞춰 학교에서 배웠으나 잘 안된다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영어도 어렵고 수학도 어렵다고 늘 툴툴거린다. 시험 문제가 쉬우면 그냥 말없이 넘어가고 저가 모르는 문제를 많이 틀리고 오면 더 열심히 할 생각은 않고 무조건 어렵다고 툴툴거리기만 한다.
딸이 학교에서 오기 전에 나도 수열 부분을 다시 복습해야겠다. 30년 전에 내가 수열 문제를 제대로 풀기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해설서를 보면 바로 이해하고 쉽게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도 그나마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
내가 그나마 사람구실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요즘은 딸 밥 차려줄 때와 공부 가르쳐줄 때뿐인 것 같다. 나머지 시간들은 의욕도 힘도 없이 겨우 버티고 있다. 오랜만에 딸내미 어릴 때 같이 여행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엮어놓은 동영상을 보고 있다.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요즘 사는 게 너무 빡빡해서 다시 아기가 되고 싶단다. 해야 될 학교 공부가 너무 많고 손을 놓을 수도 없는 현실이 버거운 모양이다. 나는 그나마 학교 다닐 때가 제일 좋았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고 친구 관계도 좋았고, 그나마 힘들었던 그 시절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엄마 노릇 외에 앞으로 뭘하며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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