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남짓 집 밖을 떠돌았다. 살고 있는 건물 어딘가에 누수가 생겨 1,2 층 곳곳으로 물이 줄줄 흘러내려온다며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복도를 다 파헤쳤다. 12월 초부터 그렇게 집 앞은 엉망이 되고 나는 이래저래 피곤한 상태로 집안에 갇혀 지냈다.
배관 점검을 하고 파이프 교체를 해도 누수가 잡히지 않아 결국 우리가 세들어 사는 집 욕실을 파헤쳐야 한다며 집을 비우라 했다. 12월 23일 딸이 다니는 학교 겨울방학이 시작된다 해서 그 다음날부터 공사를 해도 된다 하고 집을 떠나있었다.
12월 23일
한 달 전에 기말고사 끝나고 일찍 딸이 집에 돌아온 날,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아 거울 보는 걸로시간을 한없이 보내며 내 탓을 줄줄이 하는 딸을 모시고 피부과에 들렀다. 상담을 하는 중에 이마에 뾰족하게 세모 모양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새로 자랄 때마다 거울 앞에서 열심히 뽑느라 바쁜 딸을 위해 영구제모 시술에 대해서도 상담했다.
그 피부과에서는 그런 시술을 하지 않는다하여 성형외과를 찾아갔다. 언젠가 꼭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는 딸의 의지를 이미 알고 있는지라 시간 내어 간 김에 성형수술 상담도 받았다. 그렇게 여드름때문에 피부과 간다는 것이 쌍꺼풀 수술 예약까지 그날 해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2월 23일 지영이는 타고난 눈매를 바꾸는 수술을 받았다. 몽고 주름을 트고 쌍꺼풀을 했다. 언젠가 꼭 해야 한다고 동동거리는 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수능 칠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지금 해주면 졸업사진도 맘에 들어할 것이고 내년에 하면 곧 고3이라 신경쓰일 것이고 내친 김에 하는 게 좋을 듯 싶었다.
다음날인 24일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며칠 지낼 짐 가방을 들고 친구네로 들어갔다. 딱 일주일만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중간에 집에 가보니 공사가 마무리 되고 우리가 집에 들어가서살 수 있으려면 적어도 1월 3일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말을 그렇게 친구네에서 보냈다. 최대한 오래 버티고 그 집에서 나오고 집에 돌아가보니 여전히 주방을 지나 욕실까지 시멘트를 뒤집어쓴 합판이 깔려있고, 집은 시멘트 먼지 투성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남의 집에 가서 재워달라하기 미안해서 찜질방이나 모텔에서 하룻밤 보내기로 했다.
딸이 밤에 'K팝 스타' 보고 싶다하여 모텔에서 하룻밤 잤다. 실내가 따뜻하고 깨끗해 보이는데도 잠이 잘 오지 않아 밤새 뒤척거렸다. 다음날 다시 집에 가보니 그제야 변기를 붙이고 있었다. 역시 1월 4일은 되어야 변기를 쓸 수 있단다.
또 하룻밤을 친구네에서 보냈다. 그 집 둘째 딸이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겠다하여 말려서 다음 학기에 휴학하기로 하여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영특한 아이였는데 뭘 해야 할지 꿈이 없다 해서 의아했는데 대학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싶어했다. 대학 2학년이 중2병 아이처럼 삐딱하고 말이 거칠어졌다.
지난 여름방학에 보았을 땐 아랫입술 근처에 피어싱을 해서 깜짝 놀랐는데 한 학기가 지나는 동안 자퇴 이야기가 오가고 그나마 부모님과 일가 친척들까지 함께 달래서 자퇴를 휴학으로 바꾼 것이라했다. 자식 문제 만큼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또 있을까만 부모의 헌신으로 고생 모르고 자란 철없는 20대의 일탈같은 일련의 일들이 우리 모녀가 공감하기엔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 낮에 그 집에서 하룻밤 묵었던 짐가방을 들고 다시 집에 들렀더니 어제 밤늦게 공사하는 분이 주방으로 끌어내놨던 세탁기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면서 내가 어제 낮에 가서 손이 시리도록 씽크대에서 걸레 빨아서 닦아놓은 거실이며 주방 바닥이며 현관까지 다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가셨다.
다시 수없이 걸레를 빨아서 닦아내고 또 닦아내다보니 배가 슬슬 아프다.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더 내 신경을 자극하여 오는 가짜 신호가 아닌가 싶다가도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집 앞 카페로 나왔다.
어제도 여기서 한동안 혼자 커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딸은 도서관에 봉사하러 갔고,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조용히 청소나 더 해놓을 참이었는데 화장실을 자꾸 들락거려야 하는 나로선 화장실을 쓸 수 없는 우리집은 있을 곳이 못된다.
오늘은 어제처럼 멍하니 앉아서 심심하게 지내기 싫어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집에서 원두 갈아서 내려 마시는 커피가 더 맛있지만......
막상 카페에 와서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그렇게 급한 것 같던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견딜만 했다. 역시 신경성이다. 그래도 언제든 화장실에 갈 수 있으니 일단 살았다. 좀더 기다렸다가 지영이 돌아오면 다시 그 친구네에 가 있어야겠다.
배관 점검을 하고 파이프 교체를 해도 누수가 잡히지 않아 결국 우리가 세들어 사는 집 욕실을 파헤쳐야 한다며 집을 비우라 했다. 12월 23일 딸이 다니는 학교 겨울방학이 시작된다 해서 그 다음날부터 공사를 해도 된다 하고 집을 떠나있었다.
12월 23일
한 달 전에 기말고사 끝나고 일찍 딸이 집에 돌아온 날,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아 거울 보는 걸로시간을 한없이 보내며 내 탓을 줄줄이 하는 딸을 모시고 피부과에 들렀다. 상담을 하는 중에 이마에 뾰족하게 세모 모양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새로 자랄 때마다 거울 앞에서 열심히 뽑느라 바쁜 딸을 위해 영구제모 시술에 대해서도 상담했다.
그 피부과에서는 그런 시술을 하지 않는다하여 성형외과를 찾아갔다. 언젠가 꼭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는 딸의 의지를 이미 알고 있는지라 시간 내어 간 김에 성형수술 상담도 받았다. 그렇게 여드름때문에 피부과 간다는 것이 쌍꺼풀 수술 예약까지 그날 해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2월 23일 지영이는 타고난 눈매를 바꾸는 수술을 받았다. 몽고 주름을 트고 쌍꺼풀을 했다. 언젠가 꼭 해야 한다고 동동거리는 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수능 칠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지금 해주면 졸업사진도 맘에 들어할 것이고 내년에 하면 곧 고3이라 신경쓰일 것이고 내친 김에 하는 게 좋을 듯 싶었다.
다음날인 24일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며칠 지낼 짐 가방을 들고 친구네로 들어갔다. 딱 일주일만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중간에 집에 가보니 공사가 마무리 되고 우리가 집에 들어가서살 수 있으려면 적어도 1월 3일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말을 그렇게 친구네에서 보냈다. 최대한 오래 버티고 그 집에서 나오고 집에 돌아가보니 여전히 주방을 지나 욕실까지 시멘트를 뒤집어쓴 합판이 깔려있고, 집은 시멘트 먼지 투성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남의 집에 가서 재워달라하기 미안해서 찜질방이나 모텔에서 하룻밤 보내기로 했다.
딸이 밤에 'K팝 스타' 보고 싶다하여 모텔에서 하룻밤 잤다. 실내가 따뜻하고 깨끗해 보이는데도 잠이 잘 오지 않아 밤새 뒤척거렸다. 다음날 다시 집에 가보니 그제야 변기를 붙이고 있었다. 역시 1월 4일은 되어야 변기를 쓸 수 있단다.
또 하룻밤을 친구네에서 보냈다. 그 집 둘째 딸이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겠다하여 말려서 다음 학기에 휴학하기로 하여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영특한 아이였는데 뭘 해야 할지 꿈이 없다 해서 의아했는데 대학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싶어했다. 대학 2학년이 중2병 아이처럼 삐딱하고 말이 거칠어졌다.
지난 여름방학에 보았을 땐 아랫입술 근처에 피어싱을 해서 깜짝 놀랐는데 한 학기가 지나는 동안 자퇴 이야기가 오가고 그나마 부모님과 일가 친척들까지 함께 달래서 자퇴를 휴학으로 바꾼 것이라했다. 자식 문제 만큼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또 있을까만 부모의 헌신으로 고생 모르고 자란 철없는 20대의 일탈같은 일련의 일들이 우리 모녀가 공감하기엔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 낮에 그 집에서 하룻밤 묵었던 짐가방을 들고 다시 집에 들렀더니 어제 밤늦게 공사하는 분이 주방으로 끌어내놨던 세탁기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면서 내가 어제 낮에 가서 손이 시리도록 씽크대에서 걸레 빨아서 닦아놓은 거실이며 주방 바닥이며 현관까지 다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가셨다.
다시 수없이 걸레를 빨아서 닦아내고 또 닦아내다보니 배가 슬슬 아프다.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더 내 신경을 자극하여 오는 가짜 신호가 아닌가 싶다가도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집 앞 카페로 나왔다.
어제도 여기서 한동안 혼자 커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딸은 도서관에 봉사하러 갔고,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조용히 청소나 더 해놓을 참이었는데 화장실을 자꾸 들락거려야 하는 나로선 화장실을 쓸 수 없는 우리집은 있을 곳이 못된다.
오늘은 어제처럼 멍하니 앉아서 심심하게 지내기 싫어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집에서 원두 갈아서 내려 마시는 커피가 더 맛있지만......
막상 카페에 와서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그렇게 급한 것 같던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견딜만 했다. 역시 신경성이다. 그래도 언제든 화장실에 갈 수 있으니 일단 살았다. 좀더 기다렸다가 지영이 돌아오면 다시 그 친구네에 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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