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딸과 원 없이 늦잠을 잤다. 도무지 그대로 더 누워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나도 딸은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억지로 더 청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강행군하듯 많은 여행지를 돌면서 우리가 언젠가 함께 한 달가량 유럽 여행을 하며 돌아본 코스가 얼마나 여유롭고 평화롭고 또한 얼마나 멋진 곳이었나를 더 실감 나게 느꼈다고 한다.
외부와 아무런 접촉도 없이 가만히 누워 이틀을 보내고 약을 먹기 위해 위장을 채우며 며칠을 보내다 보니 나는 결코 혼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여태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항상 가족과 함께이거나 집을 떠나 살 때는 많은 하숙생으로 북적이는 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았다.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면 나름 내 삶에 다른 틀이 생기고 거기에 맞게 어떤 삶의 형태를 갖추고 살아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며 사는 것에 더 익숙한 사람이다.
아이와 함께 살 게 되기 전까진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환경에 주어진 사람들과 적당히 맞춰가며 어우러져 살았다. 하숙생들이 바뀌는 철마다 새로 들어오는 하숙생들과 낯을 익히고 익숙해지고 친해지는 과정을 어김없이 거쳤으며, 함께 어울려 자란 4남매와도 그렇게 큰 문제 없이 살았다.
가장 함께 살기 힘들었던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내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틀에 맞춰 거기에 들어가 주기를 바라는 분들의 보이지 않는 강요에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조차도 제대로 못 하고 살았다.
마침내 나를 속박하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싫은 것을 강요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해야 하는 위장과 마음의 강요를 받지 않게 된 것이다. 모든 판단과 행동의 결과에 모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당연함에도 항상 부모님이란 언덕에 기대어 살아왔던 내가 처음 이런 삶을 혼자 책임지는 것이 서툴고 힘들었다.
이젠 그냥 이렇게 살아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늘 나를 엄습하는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부분에도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능청을 떨 정도까지 되었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밥벌이를 할 수 있다. 그나마 덜 복잡하고 덜 불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선택했던 공부를 그렇게 오래 하고도 결국 그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지 못한 까닭에 내 경제적 입지는 항상 불안정하다.
한 번 시작되면 몇 주씩, 혹은 몇 달씩 앓게 되는 이 고질적인 증상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뭔가를 해보겠단 생각, 어딘가를 가보겠단 생각을 포기하고 조용히 내 몸이 안정을 찾는 데만 몰두하기로 했다. 정말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책 몇 줄을 읽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지금 당장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옷방 정리를 했다. 아직도 정리할 부분이 많지만 100ℓ가 넘는 분량의 옷과 이불을 정리하고 갖다버린 뒤 몸살이 났다.
열흘 치 먹은 감기약이 아무 효과도 없이 몸은 다시 같은 증상을 반복해서 앓고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들이 놀라서인지 전신이 쑤시고 아프기까지 하다. 옷방에 걸려있는 많은 원피스를 보면서 자신에 대해 화가 났다. 대책 없이 살찌도록 자신을 방치하고 함부로 해놓고 이젠 그 많은 옷을 입을 수 없게 되어 불편해진 현실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몰라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매일 같이 밖에 나가 만 걸음 이상씩 걸을 수 있는 거리를 걷고, 체력이 어느 정도 비축되면 근력운동도 겸하려고 했는데 그만 몸에 탈이 나버렸다. 걷는 것이 무리가 되어 생긴 증상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많은 곳에 다녀와서 면역력 약한 내가 뭔가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오늘도 말끔하게 정리된 옷방에 들어가서 줄줄이 걸린 많은 원피스를 보면서 앞으론 그 옷들을 전혀 입을 수 없는 상태가 지속할까 봐 속이 상했다.
딸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 온 곤약 젤리를 나눠 먹고, 과자도 이것저것 먹었다. 먹는 것을 의식적으로 통제해가며 살을 꼭 빼야 할까..... 옷방에 걸려있는 옷을 보면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몸도 머리도 그만큼 긴장이 되지 않는다. 그냥 느슨해진다.
지금은 그냥 건강해지는 것에만 신경 쓰고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해야겠다. 쓸데없이 많이 가지고 있는 자잘한 물건들을 틈나는 대로 정리해서 버려야 하고, 쓸데없이 많이 가지고 있는 지방과 과한 체중도 함께 정리해서 틈틈이 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