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찍어온 일본 여행 사진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꼭 다시 가보고 싶다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언젠가 함께 가자는 약속만 했다. 딸이 7살이었을 때 친구의 초대로 간 첫 해외여행으로 파리에 갔을 때, 파리 디즈니랜드에도 데리고 가려고 했었다. 그때 하필 비가 와서 놀이공원에 가지 않았다.
놀이기구만 타는 놀이공원은 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딸도 무서운 놀이기구 타는 걸 즐기지 않기 때문에 볼거리가 많은 테마파크를 더 좋아한다. 딸이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함께한 기억이 담긴 사진들을 정리해서 외장하드에 담아놓았다.
요즘은 자주 가족들 꿈을 꾼다. 서로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은 지 넉넉하게 10년은 넘은 부모 형제들과 감정의 날이 서는 사건들이 꿈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시름시름 아픈 이 몸은 언제 나을지 모르게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식물처럼 기운이 없다.
어제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아 딸이 쓰는 방 창가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쟁여두고 버리지 못한 많은 물건을 정리했다. 손을 대는 순간 거짓말처럼 먼지가 되어 내려앉는 오래된 플라스틱 박스들 속의 장난감과 딸이 애착을 가지고 있던 낡은 물건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청소하는 동안 마신 먼지 때문인지 오늘은 어제보다 더 심하게 가래를 뱉어내느라 몹시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몇 시간씩 정리하고도 다 못한 부분이 또 숙제로 남아있다. 이렇게 앓아누웠다가 며칠 쉬고 나아지면 또 정리하느라 먼지를 들이마시고 어깨가 뻐근할 정도로 팔을 움직이다 몸살을 앓게 될지도 모르겠다. 몇 년 동안 손 한 번 대지 않은 그 많은 물건을 왜 그렇게 버리지 못하고 먼지가 쌓이도록 모시고 살았을까.....
오래 쓴 라디에이터 하나, 12년 전 맨 처음 식탁으로 쓰려고 인터넷을 한참 뒤져서 샀던 다리 3개짜리 탁자, 최근에 옷방 정리하고 말끔히 비운 25년 된 서랍장, 목이 부러졌어도 돌아가는 게 안타까워 버리지 못하고 어딘가에 먼지를 안고 있던 선풍기. 내일 휴일이 지나면 다음 날 주민센터에서 배출 스티커를 사두었다가 주말에 같이 옮겨줄 친구가 오면 버릴 참이다.
요즘은 잠시 기분이 좀 나아졌다가도 어느 순간 지친다. 우울하고 기운 빠지고 출구가 없는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딸이 돌아오면 잠시 충전하고 아침에 딸이 학교 가고 혼자 통증과 함께 버벅거리다 잠시 잠들었다 깨면 밥을 챙겨 먹고 뭔가를 뒤적거리다 멍하니 지쳐서 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밖에 나가고 싶지도 않고, 이 상태로 나가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또 이 만큼 지겹게 아팠으니 나을 때도 되었겠지. 지난번엔 어떻게 나아졌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도 정말 지겹게 아프고 또 아픈 다음에야 거짓말처럼 어느 날 나아졌다. 올봄엔 좀 걷고 혼자 여행도 다닐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어림도 없다는 듯 방구들만 지고 누웠다가 5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기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 몇 달씩 입을 꾹 다물고 블로그도 하지 않고 지냈는데 이번엔 생각나는 대로 기분 풀이로 뭐든 써놓는다. 아프다고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니 그렇잖아도 그다지 많지도 않은 대인관계가 전무한 상태이니 이렇게라도 지껄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