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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7>

8월 13일

by 자 작 나 무 2017. 8. 13.

올해엔 비가 영 적게 내린다. 엊그제 시내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우산 좀 들고 나오라고 딸에게 전화를 했더니 우리 동네는 비가 안 온다 했다.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니 정말 길이 마른 상태여서 신기했다. 뒤늦게 조금 비 내리다 갰다. 

 

오늘은 환기한다고 창을 열어놨는데 예고 없이 갑자기 건물 외벽에 페인트 작업을 해서 몹시 황당했다. 집주인의 배려 없음에 기분이 상했다.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러려니 하고 또 넘어간다. 이사 나가기 전까진 계속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포기하게 된다. 이래서 자기 집이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불행이 닥치지만 않으면 견딜만 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행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통증도 만만치 않아서 생각을 고르고 감정을 가다듬어야 겨우 견딜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계속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이상 기온 현상으로 여름은 계속 더워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더 나아질 수 없는 것이고, 이런 현상은 완화의 길보다는 차츰 악화되는 길로 가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 되어야 할까?

 

이런 기조에 변화가 없다면 사람들의 성향은 날로 단순하고 과격하고 포악해지는 수가 더 많아지는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다. 배려없고 자기 위주의 이기적인 사람들이 하는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삶이란 어쩌다 한 번 행복한 걸로 만족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면 내가 왜 태어나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생물학적인 결과물인 몸뚱이가 전부인 게 정말 인간인 것인지. 발생학적인 이유 외에 인간의 존재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인지, 신의 섭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간 세상이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혼자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스승이 필요하고, 내가 사는 집에서 혼자 답을 찾을 수 없다 생각해서 일찍 출가하려 했다. 고2에 우리 동네에서 사뭇 먼 충청도 덕숭산 수덕사까지 찾아갔는데 내 출가 결심은 며칠 간의 가출로 마무리 되었다. 수덕사 견승암에 찾아갔더니 고졸 이하는 조계종에서 출가승으로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학교만 보내주면 뭐든 하겠다 했지만, 암자가 학교가 있는 시내에서 멀어서 그럴 수 없다 하여 며칠 지내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이후에 다시 그 뜻이 불붙었을 땐 어디 산중 움막이라도 빌려서 살면서 끝장을 봐야겠다 생각했지만 젊은 여자가 울타리 없이 산중에 혼자 기거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인 다른 문제와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며 만류하는 바람에 결국 칩거의 장소는 내 방이 되었다. 형제들이 다 집을 떠난 상황에 넓고 조용한 집에서 나만의 공간을 비로소 가질 수 있었고, 오랜동안 단식을 해도 나를 만류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그 당시엔 한동안 뜻한 대로 칩거하며 침묵 속에 지낼 수 있었다. 그때가 유일한 시기였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그런 열정과 집착을 부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를 찾아야 했고,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서를 찾아야 했다. 그걸 알지도 못하고 그냥 산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치욕이라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그냥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알고 싶었고, 찾고 싶었다.

 

많은 책을 읽고, 탐구하고, 막히는 게 생기면 아침 일찍 통영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미륵산 자락에 있던 어느 사찰에 찾아가서 한 스님을 만나서 여쭤보고 왔다. 한때는 천리안 불교동호회, 나우누리 불교동호회 법우들과 삼천배 기도하는 곳에도 쫓아다녔고, 티베트 선원에서 참선 유학을 다녀오셨다는 참선 전문가 스님을 만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단체 참선 지도 시간이 지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그 스님이 나를 지목하여 방으로 따로 부르셨다. 히말라야의 모 선원에 유학을 보내줄 테니 공부를 하고 오라는 권유를 하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출가하면 비구니는 참 불편한 대접을 받고 제대로 참선 지도를 받지도 못한다며 거기로 곧장 가서 공부를 하면 바로 깨칠 것 같다는 말씀을 들었다.

 

히말라야 선원에서 공부하시는 스님들이 코끼리 꼬리털로 만든 반지를 기념이라며 하나 주셨다. 내게 그 이야기를 해주신 스님보다는 가끔 찾아가는 미래사에 계시던 그 스님의 간결한 대답이나 눈빛이 훨씬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장보살의 이야기가 담긴 지장보살 본원경을 읽다가 너무나 감복하여 내가 깨달음을 얻으면 꼭 지장보살처럼 끝까지 세상에 남아 타인의 성불을 돕겠다는 서원을 했다. 주변의 신장들이 나를 돕는다면 기꺼이 나는 그런 존재가 되리라 굳게 결심했다. 여전히 나는 우주의 먼지 같은 미미한 존재지만 한 줄기 바람이 되었다 사라지겠지만 그때의 결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주가 존재하는 한, 이 존재의 씨앗이 그 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든 가지를 치고 그 뿌리를 근원으로 변화하며 살아날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덧없는 고해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지만, 아직 못다 한 숙제가 있다면 어디서든 태어나서 반복된 삶의 테두리에 다시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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