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이 되기 전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어언 20년 살았다. 앞으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좀 다른 삶을 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어떤 삶을 살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오늘은 모처럼 미세먼지가 적은 지 하늘이 맑게 보인다. 입천장이 헐었다가 열흘 남짓 지나도 전혀 낫지 않고 기침과 가래 때문에 몸도 지치고, 자잘한 상처들로 마음도 지쳤다.
수요일, 딸 생일에 처음으로 내 손으로 아무 음식도 만들지 않고 밖에서 사 먹었다. 너무 지쳐서 그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 수가 없었다. 스스로 치유되기를 기다리기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어디든 손을 뻗어야겠었어 주변에 이야기할만한 상대를 찾아보니 언뜻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한참 기억을 더듬고 생각해보니 작년에 다니던 학교에서 알게 된 정년퇴임을 곧 앞둔 선생님이 떠올랐다.
잠시 학교 가서 내가 맡은 수업만 하고 금세 돌아오는 데다 다른 선생님들은 다들 바쁘시니, 학교에서 누구든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그 선생님과는 가끔 밖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이야기 나누던 사이가 되어 그나마 최근에 알게 된 사람 중엔 가장 친밀한 사람이다.
대학교 같은 과 동기도 그 학교에 있지만 내 인생 상담을 할 만큼 친하지는 않다. 딸이랑 집 근처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날에 두 달 휴직계를 냈던 그 선생님께서 학교에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먼저 밥 먹고 딸은 자리를 뜨고 점심때부터 해질 때까지 밥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카페로 자리를 옮겨가며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슴에 응어리진 것들이 하나둘씩 이야기 속에 풀려나와서 돌덩이 하나쯤은 다시 내려놓은 듯 조금 가벼워졌다.
그날 내가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딸이 섭섭하지 않게 더 잘 챙겨줬을 텐데 원하는 것이 케이크 하나뿐이라 해서 밥 사주고 케이크 사서 나눠 먹는 것으로 생일 치레를 끝냈다. 딸은 섭섭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어쩐지 섭섭했다. 내가 그렇게 밖에 하루를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미처 말하지 못한, 털어내지 못한 마음속에 끈적하게 남아있는 앙금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자신을 비하하게 만드는 걸 왜 견디고 있는지 내게 묻는다. 왜 그러고 있느냐고.....
입안이 헐어서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가 면역력이 상당히 떨어진 것 같다. 멀티비타민도 매일 복용하고,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도 매일 여러 차례 사용하는데도 큰 차도가 없다. 푹 자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좀 나아지려니 하는데 내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계속 괴롭히고 있다.
인제 그만 괴롭히고 몸 좀 편안해지게 내버려 둬야지. 아직 더 괴롭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지 묻고 답하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겠다. 의욕 잃은 내 삶을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데 나는 닻을 내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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