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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8>

해질녘

by 자 작 나 무 2018. 8. 31.

누구라도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이 꼭 그랬다. 속에서 미처 끄집어내지 못한 말이 가슴 한쪽에서 달그락거렸다.

 

천천히 걸어서 분수대까지 갔다. 누굴 위한 분수 쇼인지 보는 사람도 없는데 곧 비가 쏟아질 듯한 흐린 하늘을 향해 무지개 같은 물줄기가 피어오른다. 얇은 유기농 막대사탕을 깨 먹던 느낌이 문득 떠올랐다. 갑자기 그 막대사탕이 먹고 싶어서 친구랑 코스트코에 가서 한참 뒤져서 찾아내어 기어코 막대사탕 한 봉지를 사다 놓고 물릴 때까지 깨물어 먹었다.

 

처음엔 입안에서 살살 녹여 먹다가 마지막엔 꼭 깨물어 먹는 습관이 있다. 분수 색깔을 보고는 막대사탕 생각이 났다. 같이 사탕을 사러 갔던 친구도 떠올랐다. 이젠 이유 없이 전화를 할 수도 없다.

 

 

 

비가 곧 쏟아질 듯한 하늘에 이미 햇빛도 사라진 길을 혼자 묵묵히 걷는다.

 

 

 

바다는 날씨에 따라 낯빛이 달라진다. 늘 같은 바다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 늘 같은 사람이 아니다.

 

 

 

이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이곳에 오면 늘 혼자 걷는 길이다. 언젠가 이곳에서 누군가 같이 걸을 날이 있을까 기대한 적도 있었다. 

 

 

 

 

어디선가 클라리넷 소리가 들렸다. 어느 펜션에서 틀어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피아노 소리와 함께 들리는 그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물린 팝송과는 달리 내 온신경을 곤두세워 듣고 싶은 악기 소리는 저런 것이라는 생각이 분명히 드는 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따로 있는 것이다.

 

이 곡도 들어보고 저 곡도 들어보지만 이미 내 귀는 소리조차도 편애하는 습관이 배인 몸이다.

 

 

 

9월부터 10월까지 눈에 띄는 대로 음악회 티켓을 샀다. 혼자 영화 보러는 잘 안 가도 혼자 음악회는 잘 간다. 가을 공연을 기다려왔다.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서 혼자 맥주라도 한 캔 홀짝홀짝 마시고 싶었는데 술 취하면 그 핑계 삼아 전화할 곳도 없다. 이야기가 하고 싶을 것 같다. 망설일 여지도 없이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비를 핑계로 방황을 끝내고 집으로 간다.

하늘이 흐린 것 보고도 우산 없이 나갔다가 비를 맞고 돌아왔다. 괜히 취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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