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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고통 피하기

by 자 작 나 무 2019. 2. 8.

고통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피하거나 극복할 것인가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예민한 성격인 나에겐 참으로 큰 과제였다.


대문만 열면 좁은 도로를 끼고 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태어나서 살았다. 도로변에 살아서 낮은 담 너머로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이들이 우리 집 마당을 누구나 볼 수 있어서 불편했다. 도로변에 살아서 기억에 남는 일 중 한 가지를 오늘 써보려고 한다.


계절마다 몇 번씩 우리 집에 찾아오는 여자 거지가 있었다. 나이는 그리 많지 않다는데 행색을 보면 누가 봐도 거지인 데다 고생을 많이 해서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 여자가 우리 집 문을 들어설 때마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주려 했지만, 그 여자가 거절하고 동냥 그릇을 내밀었다.


있는 대로 밥과 반찬을 담아주고 물도 떠서 주었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항상 친절하게 음식을 내주는 어머니의 태도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그냥 밥만 줘서 보내는 게 마음 아팠다. 우리 집에 살게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밖에 나가면 잘 데도 없고, 춥고 계속 배고프면 그 여자는 어찌 살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콸콸 솟았다. 10대 초반의 어린이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여자가 다녀가고 나면 며칠은 그 생각에 고통스러워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목에 뭔가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하면 나만의 그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 며칠을 고민하고 울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러다 몇 해 지나는 동안 나를 달래는 방법을 찾았다. 어른이 되어 내게 힘이 생기면(경제력이든 뭐든) 자기 힘으로 자신을 구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한두 번 밥을 주거나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 고통의 행진은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집안으로 청해서 깨끗이 얼굴을 씻겨놔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꼬질꼬질한 얼굴로 나타나 밥을 달라고 하곤 했다. 뭔가 하면 되는데 게을러서 저렇게 산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는 나이였다.


나를 괴롭게 하는 외부의 자극이나 사건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하면 나를 달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 그들에게 주는 건 의미 없고, 그런 삶의 궤적에 들어서기 전에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돕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그래서 나는 밥을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서 뭔가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삶의 이유를 만드는 날도 있었다.


그냥 외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찾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요즘 내가 가장 고통을 크게 느끼는 일은 자기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일이다.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부터 시작하여,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한다는 고통에서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있다면 기꺼이 나서고 싶다.


딸과 함께 기회가 닿으면 그런 일에 매진하기로 했다. 지금은 우리가 그 일에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으고,  능력을 기를 때다. 언젠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위험 속에서 구해내고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면 내 고통은 잠시 덜어질 것이다. 


결국 내가 누군가를 돕는다면 순수한 이타심의 차원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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