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존재가 마주해야 하는 공포 중에 가장 근본적인 공포를 느끼지 않기 위해 누구나 노력할 것이다. 생존과 관련된 공포를 제거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의 존재가 필요하다.
딸이 어릴 때, 나도 초보 엄마에, 경력 단절에, 건강 문제까지 겹쳐서 꽤 오랜 기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 꽤 오랫동안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은 현실에서 살았다.
그때 나에게 반작용의 힘을 내게 한 조언은
"그럼 몸이라도 팔아야 하지 않나?"
라는 말이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내 몸이라도 팔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쉽게 하는 사회의 열악한 성 의식과 도덕적 해이에 치가 떨렸다.
의도적으로 내 삶을 연명할 의지가 없음을 표명하기 위해 열흘을 굶어본 적이 있다.
그것과 달리 살아내야 하는 현실에 당면하여 어린 딸을 끼고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데 누구에게도 내 상황을 그대로 말할 수 없어서 입 다물고 지내면서 정말 쌀 한 톨 구할 수가 없어서 사흘을 굶어본 적이 있다.
사흘을 굶은 뒤 몇 달째 원비를 내지 않고 보낸 어린이집에서 밥 한 끼 먹고 돌아온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오후 늦게 이웃집에 놀러 가서 그 집에서 저녁 한 끼 먹고 돌아와서는 또 며칠을 버텼다.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가 되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해서 젊고 겉으로 봐서 멀쩡한 것이 어떻게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나 하는 생각 밖에 할 줄 몰랐다.
태풍 매미에 해일이 일었고 파도가 살던 집을 덮쳤다. 셋방이 바닷물에 빠진 뒤에야 현장 조사를 나온 사회복지사 눈에 띄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처참하게 해일이 삼킨 곰팡이 덕지덕지 핀 벽지에 오물을 뒤집어쓴 집안에서 씻어도 씻어도 사라지지 않던 그 냄새....... 그때 처음으로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등록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전기세 석 달 내지 않았다고 안내도 없이 불쑥 전기를 끊고, 연결하는 비용으로 그 당시 내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던 두어 달 치 전기세만큼의 돈을 더 받아 갔다.
전기세가 연체되어 전기 끊으러 왔다고 말이나 해줬으면 집에서 TV 틀어주는 것 외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던 내게 갑자기 전기가 끊어져서 우는 아이를 보고 그렇게 놀라서 울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 절박함을 본 집주인에게 7만 원을 빌려서 전기세와 다시 전기를 연결하는 비용까지 냈다. 밀린 전기세 5만 원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잔인한 현실이 어떤 것인지 골고루 겪어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들 사는 것처럼 비슷하게 흉내 내듯 살 게 된 후, 교단에서 사회 정의론을 가르칠 때, 있는 자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 진정한 정의냐고 내 목소리를 내서 묻곤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세금 걷어 국가를 운영하는데 국가가 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면 가난한 내 주머니에서도 왜 같은 비율로 부가가치세를 떼 갔는지 물어야 한다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끼를 라면으로 때워야 하는 자에게서 걷어가는 라면 한 그릇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와 수십억 수백억 가진 자의 라면 한 그릇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의 무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의 가난은 내 무능력함 때문이었을까?
내 가난은 게으르고 무지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니 가난한 자는 게으르고 무식해서 그러하며, 그렇게 사지에 내몰려서 죽어 마땅한 것이 이 사회가 추구하는 당연한 미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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