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20~2024>/<2020>

나의 식탐에 대해

by 자 작 나 무 2020. 9. 1.

지금처럼 식탐 많은 내가 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토록 본능에 충실한 내가 된 이유를 한 가지씩 생각해 본다.

 

모유를 먹어야 할 시기에 두 살 터울인 오빠가 있었다. 걸핏하면 젖먹이인 나를 밀치고 오빠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모유를 먹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얼마 먹지도 못하고 칭얼거리고 울었고, 설탕 잔뜩 든 분유까지 먹였다고 들었다.

 

성장기에 4남매가 먹을 것으로 서로 경쟁하듯 살 때, 나는 해마다 영양실조 판정을 받았다. 얼굴이 노랗게 질린 말라깽이여서 신체 등급은 정상보다 하위의 등급을 받았다. 키보다 항상 체중 미달이었다. 그때는 상황에 맞춰 대충 먹고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식탐은 없었거나, 동생 둘과 먹거리를 놓고 경쟁하기엔 마음이 약했던 모양이다.

 

딸을 임신했을 때 쌀이 떨어지기 일쑤였고, 달리 영양 보충할 식자재를 살 형편이 안 돼서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하며 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비참한 상황에 스스로 뛰어든 것이 한심할 지경이다. 부모형제가 다 잘 살아도 내 상황이 어떻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을 조금 받았어도 괜찮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해는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겨우 끼니를 때우고 넘어가거나 끼닛거리가 없어서 며칠씩 굶었던 때도 있었다. 내 힘으로 밥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상황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결핍이 인생의 구간 구간에 있었다.

 

이제 언제든 먹고 싶은 음식은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 먹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는 벗어나서 건강을 유지할 만큼의 적정선에서 식탐을 끊어야겠다. 의식적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반복될 때는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드러나는 부분 혹은 드러나지 않는 부분의 심리적인 이유부터 찾아서 수긍하고 다듬어보려 한다. 먼저 지나온 시간 동안 이토록 음식에 집착하게 만든 이유를 생각해봤다.

 

글로 쓸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동안 음식은 충분히 먹었으니 마음속에 맺힌 것은 기억나는 부분이나 기억나지 않는 부분까지 천천히 다독이며 자신을 안아줘야겠다. 먹고 또 먹는다고 자신을 탓하기만 하는 것은 일시적인 죄책감으로 식탐을 눌렀다가 다시 튀어나오게 하는 역할밖에 못 할 것 같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어 때로는 달랠 필요가 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책하며 자신을 긴장하게만 하는 방법은 이제 좀 뒤로 물려야겠다.

 

이제 괜찮다....... 이제 괜찮다...... 충분히 괜찮아졌다.

 

'흐르는 섬 <2020~2024> > <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는 시간에  (0) 2020.09.03
딸이 독립한 첫날  (0) 2020.09.01
자가격리 후유증  (0) 2020.08.31
8월 31일  (0) 2020.08.31
비요일 데이트 in 통영  (0) 2020.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