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거나 우울하면 음식을 먹지 않는 성격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완전히 달라져서 그런 상황이 되면 과하게 음식을 먹는다. 오늘은 어쩐지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과식하고 속이 불편해지도록 먹고도 가짜 허기에 시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며칠만 혼자 지내면 어차피 나도 움직이게 될 것인데..... 딸이 없으면 온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싫은 거다.
자기만의 일상을 살게 된 딸과 분리된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이렇게 지내다가 다시 이곳에서 함께 살 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각자의 삶을 살 게 되겠지.
함께 살던 때나 가족이었다. 부모형제도 모두 함께 사는 시기가 지난 뒤에 각자의 삶으로 좌표를 찾아갔고,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1학기 시작하기 전에 구해준 원룸에서 한 번도 잠을 잔 일도 없이 월세는 꼬박꼬박 내고 한 학기가 지났다. 자기만의 공간에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아무리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 편하고 좋아도 이제 그럴 때다.
무얼 하며 어떻게 누구와 내 인생을 다시 꾸려갈지...... 오히려 문제는 내게 있다. 혼자 어찌 살지 막막하던 참에 한동안은 여럿이 사는 곳에서 살 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집에 혼자 남겨졌더라면 이런 시기에 우울감을 어찌 감당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집안을 몇 등분해서 요일별로 조금씩 정리해야겠다. 생각만 하고 하지 못하던 것을 시작하려는데 오늘은 여기저기에서 찾아낸 빨래를 해결한 뒤에 넋 놓고 앉아서 멍하니 이것저것 먹기만 했다. 배고픈 것도 아닌데 먹고, 돌아서니 허전해서 또 먹었다.
내일은 이불이라도 하나씩 꺼내서 빨아야겠다.
혼자 있으니 창가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신경 쓰인다. 딸이랑 영영 이별한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는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걸 안다. 20년 넘게 둘이 그렇게 붙어서 살았는데 하루쯤은 내가 이렇게 심란한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필요한 물품은 쓱배송으로 주문해서 딸이 사는 집에 보내고, 사겠다는 책은 목록 받아서 내가 찾아서 사주고, 이런 뒤치다꺼리만 해주면 된다. 그래도 필요한 게 있으니 연락은 하는군. 이렇게 자유로워졌는데 왜 우울하니? 하룻밤만 자고나면 익숙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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