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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분노조절

by 자 작 나 무 2020. 9. 6.

오늘 뇌관이 드디어 터졌다. 제때 터뜨리지 못한 화가 엉뚱한 시점에 터져 나왔다. 오래 고여있다가 사라지지도 다듬어지지도 않은 감정이 불끈 올라온 것이다.

 

왜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도 결국 내가 잘못한 것으로 귀결되어야 하나? 그 전엔 그 화를 놓아버릴 수 없는 것인지.

 

잘못된 일을 머릿속에서 해결하는 데 나를 힘들게 한 당사자는 존재하지 않고, 모두 내 탓이 되고 만다. 내가 어리석은 탓이고, 내가 사람을 믿은 탓이고, 하필 거기 나간 탓이다. 이런 게 너무 싫다.

 

그간 참았던 생각이 순간 터져 나와서 조율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놓고 욕하는 댓글을 썼다. 물론 비밀 댓글로 썼다가 지웠지만, 비공개 댓글을 당사자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끝내 사과하지 않고, 사람을 우습게 보고 우습게 만든 그에 대한 분노는 그 당시 큰소리라도 한 번 내고 정리했어야 했다. 왜 나는 그때 화내지 않았을까.

 

그때도 그랬겠지. 어떻든 내 탓이다. 누구와 말을 섞어서 문제가 생기면 말을 섞은 내 탓이다. 결국 나는 그 무게를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자신을 고립시키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분화구 하나가 터진 것처럼 얼얼하고 열불이 난다. 그런 하찮은 일에 대한 분노를 아직도 담고 있었던 자신이 한심하다.

 

그때 뒤통수에 돌이라도 하나 던졌어야 했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 부류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하는데 모든 걸 내 오지랖으로 이해하려 드니까 나만 힘든 거다. 그냥 그런 인간도 있으니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끝내 자신에게 죄를 묻고 죄책감을 심는다. 

 

가치 없는 일에 마음을 두고 생각하고 화낼 필요도 없다. 잊지 마라.

 

 

태풍 전야에...... 딸은 먼저 떠났고, 나는 새로 짐을 꾸려야 하는데 바이러스에 오작동하는 컴퓨터처럼 일은 벌여놓고 수습을 못 하고 있다. 너무 오래 방안에만 있어서 우울해서 그럴 것이라고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감정까지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이 잘못한 점을 추려내는 내 머릿속이 정전되었으면 좋겠다.

 

왜 그랬어!!!!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랬어!!!!!!

 

제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상처는 결국 덧날 수도 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은 분노때문에 오늘은 일찍 약 먹고 자야겠다. 밀린 일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어떻게든 하게 되겠지.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어도 되는데 그 불안함이 이 지경까지 자신을 몰아넣어야 우회로를 찾을 것인지...... 

 

이럴 때 누구와 이야기를 했던가 생각해보니...... 내 속에 있는 나뿐이다. 한때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긴 하지. 글로 토해놓고 마음 가라앉히고, 할 일은 하고 자야지. 얼른 짐싸고 약 먹고 자자.

 

 

**

숨 고르기하고 쓰레기 분리수거 한 것 다 갖다버렸고......

이제 가방 잘 싸고...... 또 얼마나 조절이 되는지 보자.

 

 

 

***

나는 화를 내면 안 된다. 얼른 이 감정을 정화시키지 않으면 금세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 글을 쓰고 감정을 내려놓는 동안 끊임없이 기침이 연신 나왔고, 갑자기 어느 부위 신경이 마비되는 것 같은 증상도 겪었다. 약한 고리가 반응하는 것이겠지.

 

이제 그만하면 됐다.......

 

속에 있는 감정적인 말을 쓰고 나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평상심으로 금세 돌아왔다. 머리가 정말 나쁘긴 나쁜 모양이다. 오늘 저녁 몇 시간 동안의 나 자신은 연구 대상이다.

 

아깐 분명히 지구가 내일 멸망하고 오늘 밤에 내가 먼저 홧병으로 죽을 것 같았는데 신기하다. ㅎㅎㅎ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꺼내서 터뜨려야 할 때도 있나 보다. 나쁜 감정은 자꾸 잊으려고만 해서 가끔 탈이 나는 모양이다. 생각을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고, 영양제를 먹고 머리 바깥으로 뻗치는 에너지를 차단했다. 불과 20여 분 전까지의 내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상태의 평정심을 찾았다.

 

그 생각은 한 번은 바닥까지 들어가서 들여다보고 버려야 할 것이었던 모양이다. 비슷한 종류의 Karma에 한꺼번에 올라탔다가 더 탈 것이 없는 상태까지 내 잔상 속에 남은 부분까지 완전연소해서 평정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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