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불타는 금요일이라지만 나에겐 월급이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날. 그래도 오늘은 집에 가서 뭔가 맛있는 것 먹어야지!
퇴근 40분 전부터 슬슬 가방을 싸고, 시험 문제 내느라 정신없던 컴퓨터를 끄고 얼른 퇴근하고 싶어서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가봐야 오늘은 딸도 오지 않고 혼자 있을 텐데....... 어쨌든 얼른 나가고 싶었다.
컴퓨터 꺼놓고 가방 싸놓고 나니 심심해서 책 읽다가 오늘의 셀카도 찍고.
찍어 놓고 보니 신기한 내 옆 모습. 옛날에 턱 깎아 달라, 코 세워 달라고 엄마한테 괜히 떼썼을 때 왜 내 등짝을 후려치셨는지 알겠다.
오늘도 여전히 오 선생님은 힘껏 액셀을 밟으셨다. 국도에서 속도 120은 기본이다. 카트라이더 선수급으로 산청-진주간 국도를 지나 진주 시내를 통과해서 진주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불과 30여 분만에 도착했다. 학교에선 딱히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 조용한 분이신데 운전대만 잡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추월차로에서 항상 강렬한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시는데 눈빛은 이렇게 말한다.
"비켜~! 나 보다 느린 것들은 다들 비키란 말이야!"
덕분에 배차 간격이 거의 한 시간으로 길어진 통영 가는 버스를 평소보다 40분 이상 빠른 것으로 탈 수 있었다.
통영에 도착하니 오래 살던 곳인데도 어쩐지 낯설게 느껴진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땡이사랑 님'의 김밥 사진 본 것이 가장 진하게 맺혀서 배달 앱으로 김밥과 순대, 튀김을 주문했다. 혼자 어떻게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문 액수는 채워야 하니까 내일까지 먹을 각오로 주문했다.
늦은 시각도 아닌데 재료 소진으로 김밥 주문은 거절당했다.
매일 맛있는 것만 드시는 '가넷찡 님'은 고기로 배를 채우신다고 하고, '이팝나무 님'은 맛있는 순댓국을 드신다는데..... 나도 집에 돌아와서 내 소중한 한 끼를 라면 따위로 때울 수는 없다.
우리 동네 새로 뜨는 베트남 현지인 맛집에 찾아갔다. 혼자라도 두 가지 메뉴 주문해서 먹을 각오로 갔는데 오늘 일찍 문 닫았다.
어쩔 수 없이 동네 마트로 달렸다.
고기 앞에 서니 갑자기 배가 고프지 않다. 그동안 먹고 싶다고 생각한 음식은 그 음식을 좋아하는 딸에게 맛있게 해 주고 싶어서 일종의 협조를 한 것일 뿐이었다. 내 입맛은 그쪽이 아닌데 늘 협조하며 살았던 거다.
갈치 조림이나 꽃게 찌개를 끓일까 생각하다가 참아귀 앞에 우뚝 섰다.
바로 이거야!!!!!
맑은 아귀탕을 끓이기로 하고 채소가 비싼 관계로 무와 버섯만 샀다. 그리고 어느 시간대인지 배 고플 때 '야나 님'이 올리신 맥스봉 사진 앞에서 침흘렸던 기억에 배 고플 때 장 보는 바람에 맥스봉을 잡았다 놨다 하다가 결국 장바구니에 담아왔다.
일단 냄비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부터 가스에 올린 다음에 치즈 맥스봉 하나를 기분 좋게 까먹었다.
손질한 참아귀 싱싱한 것 세 마리 4,200원. 무는 반 잘라 놓은 것 하나 샀다. 혼자 살면서 제대로 해 먹고 살기는 쉽지 않겠다.
끓는 육수에 소금 조금 넣고 무 넣고 한소끔 끓이다가 아귀를 넣었다.
국물 깔끔하게 먹으려고 마늘도 찧지 않고 편으로 썰어서 넣고, 홍고추는 아주 비싸서 청양고추 두 개 넣고 콩나물 넣지 않고 버섯 한 개 썰어서 허전한 냄비를 채웠다.
맛술 넣고 소금과 국간장을 반반 비율로 간했더니 깔끔하다.
그 흔한 콩나물, 쑥갓, 미나리 같은 채소가 들어가지 않아도 이 정도면 충분히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다. 심지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있다. 역시 재료가 싱싱한 게 기본이다.
오늘은 허전한 내 마음을 채워줄 음식으로 깔끔하고 비린내 없는 맑은 아귀탕으로 충전 완료.
다음 주 금요일에 번개 가려고 서울 가는 버스표도 사놔서 급 다이어트라도 해야 할 판인데 시원한 국물 한 그릇에 아귀 두 마리 해치우고 나니 입맛이 마구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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