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 한참 노래방이 처음 유행했던 시기에 간혹 아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갔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에 아르바이트하던 학원에서 만난 강사 언니가 노래방을 특히 좋아해서 만나서 저녁 먹으면 그다음 코스는 노래방이었다.
학교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어울려서 저녁을 먹어도 항상 끝에는 노래방엘 가는 거다. 노래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마이크를 주면 불러야 하니까 나도 두어 곡 정도는 가사를 외워야 했다. 분위기는 맞춰야 하니까.
분위기 맞추며 적당히 부를 노래로 그 당시 유행했던 노래 중에 노사연의 '만남', 김수희의 '애모'라는 노래 두 곡을 외웠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사랑이 뭔지는 몰라도 사랑 앞에서는 작아지고 다가서지 못하고 멈춰 서서 등 뒤에서 우는 모습이 그려지는 가사가 어쩐지 그때도 그럴듯했다.
좋아한다고 다 사랑하게 되진 않는다. 사랑한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가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어제 보던 드라마에서 대학 때 좋아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사는데도 과하게 들이대서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곧 죽을 목숨이어서 죽기 전에 좋아하는 남자에게 원 없이 들이대 보기라도 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말짱하게 살 때는 못하던 것을 죽기 전이니까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해본다는 거다. 결국 살아서는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 설정이니까 이해한다.
작년에 내 딴에는 꽤 하지 않던 짓도 했다. 나이 더 들면 그때라도 안 찍어봤으면 아쉬울까 봐 사기 셀카도 많이 찍었고, 마음에 끌리는 남자에게 나름 들이대기도 해 봤다. 물론 상대가 싫어할까 봐 드라마처럼 그러진 못하고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 게 전부다. 그래도 옛날 펜팔 친구에게는 몇 해가 지나도록 끝끝내 그런 말 한마디 못했는데 이만하면 내가 많이 발전한 거지.
거의 두 달 전에 보낸 이메일도 읽지 않았으니 나는 진작에 까인 거다. 말도 못 해본 것보다 후회는 덜 하겠지.
그렇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선물 받은 와인 한 병을 훌렁 다 마시고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네 나이가 몇인데 이러고 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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