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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차를 살까......

by 자 작 나 무 2021. 2. 24.

차를 살까?

차를 사야 할까?

 

오래전에 기분대로 구불구불한 국도를 밤중에 레이싱 선수처럼 달리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던 내가 비에 젖은 도로에서 사고 나서 폐차한 다음엔 내내 남이 운전해주는 차만 타고 다녔다.

 

여행길에도 남이 운전해주는 차에서 음악 듣다가 풍경을 보다가 졸기도 하는 게 익숙해져서 좋았다.

 

그런데 작년부터 더러 찾아다니던 작은 마을에 가는 버스 노선이 거의 사라지고 배차 간격도 한없이 길어져서 하루 코스로 다녀오던 여행길에 마음대로 나서기 몹시 어렵게 되었다.

 

작년 가을부터 계속 차를 살까 말까 고민한다.

함양 개평 마을에 다녀온 뒤엔 내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여행지에 가는 설렘이 얼마나 나에게 큰 행복인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거창의 그 계곡으로 이어진 길을 달릴 때, 내려서 걷고 싶은 길을 지나쳐야 했을 때, 다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간혹 버스를 타면 입 험한 기사가 혼잣말을 아주 크게 쌍욕을 섞어서 할 때, 나도 모르게 그런 험한 말에 한없이 기분이 상하고 쪼그라드는 나를 발견하고는 이젠 사람이 무작위로 섞여서 타는 차를 타는 게 망설여진다.

 

차를 사서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그 맛에 남자 친구 사귀는 일은 또 뒤로 밀릴 것 같다.

 

오늘 오후 늦게라도 제주 가는 비행기를 탈까 했다. 그런데 내일부터 날씨가 엉망이다. 비 오는 제주에서 며칠 혼자 다니면 딱히 기분 좋아지거나 할 것 같진 않아서 포기하고 이불속에 누우니 힘이 빠진다.

 

놀러 갈 생각 하면 없던 힘도 나는 희한한 체질이다.

 

올해 열심히 일하고 돈 모아서 몇 해 뒤에 코로나 19가 세계적으로 잠잠해지면 긴 유럽 여행길에 오르는 계획이 나에겐 남은 복권이다. 하루하루 그냥 이런저런 자잘한 일을 삼키고 견디면서 그날만 기다리다가 벼락 맞은 것 같은 팬더믹에 발이 묶였으니 그동안 새 여행 계획이나 짜면서 버텨야겠다.

 

되지도 않은 남자 친구 타령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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