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마늘을 사서 쓰다가 자주 음식을 하지 못하니까 냉장고에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버리게 되는 경우가 반복되어서 통마늘을 샀다.
음식 할 때마다 한 통씩 까서 쓴다. 오늘 달걀 장조림 하려고 마늘 한 통 까는데 한 알씩 껍데기를 벗길 때마다 촉촉하고 하얀 마늘이 쏙 나오니 묘하게 기분 좋다. 내 딸이 그렇게 마늘 까는 것을 재밌어하더니 왜 그걸 재밌어하는지 알겠다. 옛날엔 마늘 씨알이 작아서 마늘 까기가 쉽지 않았는데 요즘 마늘은 알이 굵어서 껍데기 벗기기도 한결 편하다.
마늘 몇 톨만 있으면 되는데 재밌어서 앉아서 몇 알 더 깠다. 다른 집안일은 싫어하는데 마늘 까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딸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뭔지 알고 보니 웃음이 났다.
휴대전화 게임 중에 집 꾸미는 게임이 있다. 넓은 정원을 구획 별로 꾸미고 집안도 한 가지씩 꾸미는 게임이다. 어느 날 딸이 그 게임 창을 열어서 내가 꾸민 정원을 들여다본다. 신기하게 어느 계절에 꾸민 정원은 식물의 종류, 색깔, 유리창, 바닥, 의자까지 여러 가지 선택에 있어 경우의 수가 꽤 다양한데 우리 모녀의 선택지가 100% 일치했다.
한 번도 서로 게임을 하면서 어디를 어떻게 꾸미는지 본 적도 없는데, 경우의 수를 계산하면 꽤 엄청난 확률로 100% 일치하는 게 어찌나 신기했던지 딸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는 기호에 대해 딱히 대화하지 않는데 특정 연예인을 싫어하는 특징이나 이유가 일치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해 싫어하는 부분이나 경향성도 비슷한 모양이다.
연예인에 열광하는 10대가 흔한데, 나와 딸은 10대에 연예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포장된 이미지에 몰입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런 것조차도 어쩌면 내가 은연중에 강요하거나 강권한 것이 있어서는 아닐까 가만 생각해 보았다. 무엇을 하거나 선택과 뒷감당은 알아서 하도록 했다. 단 한 가지, 여행지를 고르는 것은 내가 주로 했다. 어차피 그것만은 딸이 나보다 경험이 많지 않음으로.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를 닮아가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인지, 타고난 기질이 서로 닮은 부분이 많은지 잘 모르겠다. 체질과 성격은 다른 점이 많다. 2년 동안 대학 입시에 원서를 열입곱 개 썼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썼는지 딱 한 군데 알았을 뿐. 나는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원서를 썼는지도 몰랐다. 원서 접수할 비용만 냈을 뿐이다.
그 정도로 딸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고 선택에도 거의 간섭하지 않고 산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듯 보이지 않는 목줄에 묶여서 산 것 같은 나의 10대, 20대의 삶을 돌아보면 그것이 내 인생이었는지조차 의심스럽고 견디기 힘들기도 했으니 어쩌면 그에 대한 반작용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는 것조차도 내 의지가 담긴 노력에 속했다. 집요한 내 성격을 누르고, 이 정도 해냈으면 부모 노릇은 잘한 것 같다.
어제 딸을 학교 기숙사에 보내고 와서 오늘은 종일 허한 감정에 시달린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문득 딸 방에 들어가서 문을 열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기분이 퀭해져서 한 번 드러누웠다가 일어나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정말 어제가 마지막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간혹 만나기는 하겠지만, 내내 같이 살던 때와 다르니까 또 적응해야 한다. 지난 학기엔 나도 다른 지역에 가서 일해야 하니까 떨어져서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번엔 혼자 어지러운 집 안에 있으니 기운 빠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보름 남짓 같이 지내다가 딸이 가고 없으니 우울하고, 목이 컥 막히는 외로움이 엄습한다. 보고 싶다고 한 번씩 만나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나는 혼자 살고 싶지 않다. 늘 누군가와 함께 지내다가 혼자 사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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