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방향으로만 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퇴화하는 것 천지다.
지금 내 정신 상태는 정상일까? 정상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 타인에게 영향을 주거나 노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기준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 나는 정상인가? 그렇지 않은 점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가 점점 예전과 다른 나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서랍 안에 든 연필 한 자루까지 줄이 맞춰져 있어야 할 정도로 주변 상황까지 완벽하게 통제하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까지 정확하게 되어야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아마도 생각이 너무 끔찍할 정도로 많아서 에너지 소모도 많지 않았을까.
요즘은 최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멍청하게 지낸다. 생각해야 할 순간에도 순발력 있게 좋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집 정리를 해야 하는데 손 놓고 지낸 지가 꽤 됐다. 폐허 속에서 내일모레 지구가 멈추거나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다 놓고 산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깔끔하게 한다. 그 외의 것에는 무관심이 아니라 일부러 학대라도 하는 것처럼 내 일상은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제자리에 있다. 심지어는 며칠 지난 먼지를 그냥 둘 때도 있다.
엊그제 어느 게시판에서 잠시 댓글을 쓰면서 마음이 살아난 것 같은 착각이 든 순간에 음식을 만들고 청소도 했다. 계획하지 않았던 것이 술술 자동시스템처럼 움직여졌는데 아무 자극도 생각도 반응도 하지 않게 되면 나도 모르게 침묵 속에 그대로 멈춰있다. 모든 것이 멈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며칠씩 잠만 자고 그냥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와서는 잠만 잔다. 이러다 괜찮아질는지 더 심각해질지 아직은 모르겠다. 오늘은 공기 청정기에 물을 채워야 한다. 며칠 전에 황사 때문에 그 기계를 씻어서 물을 새로 채운 다음에 다시 물을 보충하지도 않고 틀어놓지도 않았다.
저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물은 채워놓아야 돌아갈 텐데 사나흘 전부터 멈춰있다.
지난 일기를 들춰보면 나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게 나라니....... 이렇게 변해도 산다. 살아진다.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깼다. 덕분에 정신이 좀 맑아져서 눈에 치워야 할 것이 보인다. 그래도 어제 식물에 물은 다 줬고, 욕실에 화장지도 채웠다. 수건을 새로 개어서 채워야 하는데 그건 귀찮아서 건조대에서 한 개씩 건져서 쓴다. 오늘 빨래 정리하고, 몇 가지 자잘한 일은 해놓고 잠들어야겠다.
의식적으로 내 주변 상황을 무시하고 못 본 척하는 것인지 적응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생각해보니 전자 쪽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닌 거다. 그럼 어떻든 이 모든 것을 치워야 한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자신에게는 해가 되는 줄 알면서 이렇게 지내고 있으니 괴로움으로 괴로움을 짓이기는 꼴이다.
'흐르는 섬 <2020~2024> > <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 7일 (0) | 2021.04.07 |
---|---|
4월 5일 (0) | 2021.04.05 |
나른한 오후가 좋다. (0) | 2021.04.04 |
생각 정리하기 (0) | 2021.04.03 |
인생은 아름다워 (0) | 2021.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