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얼추 다 떨어지고 그 사이 잎이 파릇파릇 돋았다.
어릴 땐 무서워서 덜덜 떨면서 겨우 건너던 다리를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잘 건너다닌다. 태어나기는 육지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온 뒤에 다리 너머로 이사했다.
항상 바라보던 바다 너머 건너편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좁고 작은 다리 위에 마침 퇴근 시간에 줄지어 지나는 차량이 꽉 차서 흔들린다. 감정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어서 아무렇지도 않다. 전두엽에 문제가 생긴 청소년처럼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내 감정에 빠져서 현실 감각을 잃었다.
다리를 건넌 뒤에 내 속에서 꽤 오래 자란 생각 하나를 정리했다. 욕심이다. 내려놓자고 마음먹으니 잠시 홀가분해졌다.
냉장고에 있던 가지 하나 썰어서 부치고, 토마토는 올리브 오일에 볶아서 바질 페스토 곁들이니까 먹을만하다. 그냥 먹기 섭섭해서 와인도 한 잔
오늘 처음으로 입맛이 없어서 점심을 남겼다. 실수 없이 해야 할 일은 잘 하고 왔는데 다리를 건너면서 본 아름다운 풍경에 나도 모르게 다른 시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상한 시간의 터널을 지나서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노래를 듣다가......
좀 철 없어도 괜찮은 20대쯤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허튼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씻고 일찍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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