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20~2024>/<2021>

텅 빈 교실에서

by 자 작 나 무 2021. 4. 16.

*

오늘은 노란색 긴 카디건을 입고 출근했다. 생활 한복 같이 보이는 남색 원피스 위에 덧입고 분홍색 스카프를 리본처럼 꼬아서 매고 나갔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반응을 읽기 어려운 고3 교실에서 목 안이 칼칼해지도록 떠들었다. 온라인 수업 주간이어서 아무도 없는 2학년 교실에 오후에 잠시 앉아서 운동장 너머로 보이는 산을 바라보았다.

 

바다 건너에 있는 산이  그 사이 바다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가깝게 보인다. 문득 가슴이 답답해졌다. 꽉 찼던 교실이 텅 비었을 때 기분을 생각하게 되니 참 기분이 이상하다. 

 

그냥 우리 반 아이들은 집에 있어서 빈 교실인데...... 막 정들고 한창인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었을 그들도 결국 수장된 그 순간은 얼마나 아찔하고 길었을까......

 

4층 3학년 교실 창가에 노란 리본이 몇 개씩 묶여있다. 온몸으로 표현하는 노란색 옷이 다행히 민망하지 않았다. 워낙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이 많은 동네여서 때론 어디서 어떤 소리를 듣게 될지 신경 쓰인다.

 

*

점심때 잠시 옆자리 친구와 걸으며 나눈 대화 속에서 나의 부족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내가 어떤 말을 할 때 듣는 사람은 나와 처지가 다르고, 그런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으니 내 아픔을 함부로 토로하면 안 된다는 사실. 알고 있어서 거의 입을 떼지 않다가 간혹 앞뒤 계산 없이 가끔 말하게 될 때가 있다.

 

듣는 사람은 힘들 수 있다...... 말하지 말아야 한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객관적인 시선과 반응을 확실하게 알려줬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더 많으니까 나는 더 많은 말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표현하는 방법도 아주 옛날처럼 온건하고 반듯한 말만 써야 한다.

 

3월에 그러지 못한 어떤 말을 그냥 해버린 것이 여러 차례 생각 끝에 후회에 후회로 남았다. 내 안에 남은 분노와 아픔은 혼자 생각하고 벽 보고 말하고 삼키고 그냥 그러는 거다. 나와 다른 사람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다. 비슷하지 않다.

 

 

'흐르는 섬 <2020~2024> > <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넷 없이는 고립무원  (0) 2021.04.20
벽 없는 감옥에서  (0) 2021.04.18
4월 16일  (0) 2021.04.16
자다가 깨면 문득 더 쓸쓸해진다.  (0) 2021.04.15
하늘빛이 고와서.....  (0) 2021.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