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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by 자 작 나 무 2021. 4. 25.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10대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대한해협을 건너다가 자살한 윤심덕 이야기를 그때 어머니께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노래 가사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사는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혼자 있을 때 멍하니 그 노래를 기억하는 대로 따라 부르곤 했다. 어른들의 세상도 저렇게 허망한 것이구나. 그 당시에 내가 느끼기엔 오래 살아볼 필요도 없는 모양이라고 삶에 대한 갈망을 묻기에 적당한 가사였다.

 

하지만 내가 살아본 세상은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 아니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던 20대 후반에 내가 만났던 사람은 내가 그토록 그리던 정신세계를 나보다 먼저 탐험한 혁명가였다.

 

꿈에 그리던 인연을 만났어도 어쩔 수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 짧게 스치고 허망하게 떠나보내야 했다. 그땐 다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고 허무에 빠져서 아무나 만나서 대충 살다가 가면 그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됐다. 아무나 만나서 맞춰서 사는 것은 정말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엔 하기 싫은데 그렇게라도 나를 내려놓고 버려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내 상황이 딱히 내세울 만큼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때처럼 아무나 나 좋다는 사람 만나서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인 듯 대충 살고 싶지 않다. 치열하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아니다. 어림도 없는 사람 만나서 허튼짓 하는 것이 싫을 뿐이다.

 

돈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살아가려면 필요하고, 명예는 좇아가고 싶지 않고, 사랑은 나를 살리는 데 필요하다. 다 싫지 않다. 필요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길, 사랑에 대한 갈망을 채우지 못해서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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