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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나를 멈추게 하는 것

by 자 작 나 무 2021. 5. 3.

집에 전동 드라이버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건전지를 바꿔서 쓸 수 있는 일자형 스크루 드라이버였는데 쓸 만큼 썼는지 이젠 건전지를 바꿔도 작동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충전식으로 유용하게 쓸 거라고 야심 차게 사들였던 보쉬 전동 드라이버였는데 언젠가 집수리하느라 사람이 몇 번 오간 뒤에 그 드라이버만 사라졌다. 충전기와 부속물만 덩그러니 남았다.

 

집에서 물건 잃어버리는 것도 싫지만, 내가 집안의 잡다한 일을 다 보는데 꼭 필요한 전동 공구가 발도 없는데 사라진 것은 불쾌하고 불편한 일이었다. 이후엔 어지간하면 사람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게 된 시초는 아마도 사기당해서 생긴 빚 때문에 2006년에 법원에서 압류 딱지 붙이러 내가 없는 사이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간 그날 이후였다고 기억한다. 그 당시에 무슨 캐피털에서 보냈다는 불법 추심원이 집으로 밀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 불법 추심원 머리 모양이 칼로 각지게 잘라 놓은 것 같은 깍두기형 머리였던 것도 한 몫했다. 법을 몰라서 신고도 못하고 어린 딸을 안고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내가 이상한 영화나 드라마에 한 편 출연했던 것처럼 기억난다.

 

혼자 살면서 험한 꼴 많이 봤다. 그때마다 남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들일 남자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아주 애를 쓰면서 겨우 버텼다.

 

한 가지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나는 매번 뒷걸음부터 친다.

 

컴퓨터 파워가 나간 뒤에 새 파워를 사다가 조립하면 되는데 해보지 않은 일이어서 살짝 멈칫했고, 무엇보다도 전동 드라이버가 없으니 손목 힘이 유난히 약한 내가 수동으로 드라이버를 조작해서 조립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내내 가만히 있다가 오늘 늦게야 전동 드라이버를 새것으로 샀다.

 

잃어버린 것과 비슷한 것으로 골라서 결재하고 나니 살짝 약 오른다. 이게 뭐라고 여태 안 하고 못하는 것처럼 뒷짐 지고 있었을까. 드라이버 받아서 충전이 잘 되면 데스크 탑 컴퓨터를 분해하고, 못 쓰게 된 파워를 해체한 다음에 마땅한 것을 찾아볼 참이다.

 

워낙 산 지가 오래 되어서 그 데스크 탑은 버리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만 그 컴퓨터 하드에 저장된 많은 사진을 어딘가에 옮겨놓기는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파워 하나 사다가 돌아가는지 보고, 잘 되면 그래픽 카드나 뭐 그런 것도 하나씩 교체해서 써 볼까? 메인 보드가 너무 오래된 것이어서 그게 더 불편할까? 

 

에라 모르겠다.

 

*

2002년에 딸이 세 살 되던 해에 컴퓨터를 새로 샀다. 아이 어릴 땐 컴퓨터가 해로울까 싶어서 임신했을 때부터 컴퓨터 없이 살았다. 그러다가 딸이 세 살이 된 다음엔 컴퓨터를 다시 사서 나도 인터넷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전에 컴퓨터에서 손을 놨던 1999년에는 분명히 PC 통신 시대였는데 몇 년 사이에 뭔가 바뀐 것이 그땐 참 생소했다.

 

조금 낯설면, 한 가지가 조금 부족한 것 같으면 그냥 멈추는 이런 성향을 한 번 마음 크게 먹고 고쳤는데 살다 보니 또 병처럼 재발했다. 패배자 근성이다. 결국 가야 할 길이라면 너무 오래 멈춰 있거나 뒷걸음치지 않는 게 좋다.

 

도대체 뭘 상대로 이렇게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것인지 내 머릿속에서 멈춰 있는 지점의 문제점을 찾아서 이것부터 수리해야겠다. 알면서 다가가기 싫은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어차피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결국 내가 해야만 한다. 우선 그게 싫은 거다. 매번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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