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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감정의 유통 기한

by 자 작 나 무 2021. 11. 11.

11월 11일

엊그제 세븐일레븐에서 접수한 택배 상자가 그대로 편의점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알바가 실수한 것을 다른 알바가 알아내서 전화를 한다. 퇴근길에 들러서 꼬인 휴대폰 보상판매 건을 해결하고 하늘을 보니 어디를 가도 우울할 것 같아서 곧장 집으로 왔다.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택배 상자를 하나씩 뜯어서 물건을 꺼내고 그동안 쌓인 택배 상자가 현관을 다 막을 지경이어서 분리배출하기 위해 테이프까지 하나씩 벗겨내서 정리하고 나서는 어쩐지 허전하다.

 

고구마를 씻어서 찜솥에 앉히고 딸에게 오늘 안부 카톡을 보내고 따뜻한 고구마 몇 개를 먹고 보니 배는 부른데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리를 건너던 버스 안에서 게으르게 찍은 사진 석 장을 옮기고 심심할 만큼 평화로운 내 일상에 감사는커녕 허기를 느끼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버스 타는 곳에서 한 소박한 커플이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와서는 한참 손잡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는 것, 상대가 내미는 손을 거부감 없이 잡고 어디로 이끌거나 따라갈 수 있다는 것.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안다. 내게 결핍된 것, 내가 바라는 것 중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그런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교감하고 그 안에서 생기는 에너지로 조금 더 온화한 기운 속에 살고 싶은 내 욕심. 헛도는 껍데기 바스락거리는 마음이 아니라 벗겨도 벗겨도 한결같은 속마음. 그 마음으로 살아내는 게 가끔은 까슬까슬하다.

 

 

감정에도 유통 기한이 있다.

감정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 두 번, 세 번 만나서 정들면 좋은데 멀고 또 멀어서 잠시 머금었던 감정은 바람 불면 흩어져버린다.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내가 과연 오래 혼자 살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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