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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말 걸지 않으면......

by 자 작 나 무 2022. 1. 16.

나도 거의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다. 할 말이 없으면서 내가 먼저 말 거는 상대는 딸뿐이다.

그 외엔 누구라도 내게 말 걸지 않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거다. 싫고 좋음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고작해야 온라인 카페 게시판에 잡다한 이야기를 쓰고 댓글을 주고받는 게 내 대인관계의 전부인 셈이다. 여태 그렇게 살았다. 20대 중반부터 시작한 온라인 생활이 익숙해서 학교에서 만난 친구 외에 대부분의 사람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알고 지낸다.

 

어떤 사람은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딱히 어떤 활동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애쓰지 않는 내가 사람과 교류하는 방법을 그 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직장에서 알게 된 사람은 오히려 사적인 관계로 가까워지기 쉽지 않다. 

 

 

몇 달 전부터 온라인 카페 친구 중에 제주도 사는 동갑 친구가 거의 매일 나에게 반복해서 이런저런 말을 걸고 수시로 전화도 한다. 그러다 보니 친해졌다. 익숙해지면 친해진다. 혼자 사는 사람은 어딜 가서 어떻게 사고가 나거나 사라져도 알 수 없으니 서로 안부를 챙겨주기로 했다.

 

통화하다 보니 같은 대학 동문이다. 그냥 온라인 카페 친구인데도 그 많은 사람 중에 인연이 닿는 사람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연결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몹시 속상한 날에 푸념을 적었는데 나를 위로해주겠다며 그 친구가 댓글로 전화번호를 남겼다. 아무리 온라인 카페에서 댓글 소통도 하고 게시글도 많이 쓴다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 전화를 걸어보니 괄괄한 경상도 여자다.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화끈한 성격인지 알겠다. 나와 색깔이 상당히 다른 사람이다.

 

1월 첫주에 제주도 놀러 갔을 때 친구 뒷모습을 찍어서 온라인 카페에 올렸더니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나에게 끊임없이 말 걸어주고 챙겨주는 사람이어서 기록해 둔다.

 

가끔 온라인 게시판에 내가 혼자 어딜 간다고 써 놓는 이유를 알게 된 뒤에 그 친구가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로 훌쩍 갔다가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누군가는 알아야 수습할 텐데 항상 혼자 움직이고 혼자 여행하는 습관이 들어서 어디 가는지 게시판에 써 놓기도 한다.

 

*

며칠 동안 밖에 나가 있다가 돌아오니 말 한마디 섞을 사람 없는 주말의 이 공간이 나를 점점 작아지게 한다. 누구에게든 말을 걸어볼까. 그래도 될까..... 무슨 말을 할까.....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외로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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