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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처음 맛보는 막걸리

by 자 작 나 무 2022. 1. 29.

 

1월 28일

처음 귓불 뚫어서 귀걸이를 하겠다던 딸의 야심 찬 계획은 엉뚱하게 날아갔다. 어지럽다며 금은방에서 주저앉았던 딸이 귀걸이를 다시 빼고 나니 괜찮아졌다. 덕분에 내가 처음 귀 뚫어서 귀걸이를 하게 됐다.

 

* 마라탕

다음 코스는 통영에서 꽤 맛있다고 소문난 마라탕 집에 가기로 했다. 새로 알게 된 음식 중에 중독성 있어서 딸이 자주 먹는다는 음식이 마라탕이다. 딸이 잠시 쇼크 상태였던 것에 나도 덩달아 긴장해서 살짝 진땀이 났다. 뭔지 더 긴장을 풀어줄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말 나온 대로 흘러서 이 지역에서 유난히 맛있다고 소문난 마라탕 집에 찾아갔다.

 

식당 안에 빈자리 없이 여학생 손님들이 꽉 채운 마라탕 집 앞에서 돌아섰다. 정말 인기 많은 음식점이니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 다음에 한 번은 먹으러 와야겠다.

 

* 막걸리

집에 들어오는 길에 집 근처 마트에서 처음 먹어보는 막걸리 한 병을 샀다. 딸이 성인이 된 뒤에 어떤 술이든 한 번씩 같이 같이 마셔보기로 했다.

 

 

막걸리는 딸이 아직 맛보지 못한 술 중 한 가지. 나도 술을 즐기지 않으니 딸이 스무 살이 된 이후에 간혹 함께 마셔본 술이 고작해야 맥주 종류, 와인을 벗어나지 못했다. 안주로 먹으려고 손질한 오징어 세 마리와 생굴을 샀다. 오징어는 버터를 듬뿍 둘러서 프라이팬에 굽고, 생굴은 씻어서 달걀 입혀서 부쳤다. 

 

막걸리 맛을 본 딸의 표정이 애매하다. 쌀로 만들었다고 해서 쌀 맛이 날 줄 알았는데 술맛이란다. 나도 한 잔 따랐다가 한 모금 맛보고는 치웠다. 

 

둘이 먹을 거라고 딸기 일곱 알에 만육천 원이나 하는 왕 딸기를 샀다. 혼자는 아까워서 사지 않았을 것도 딸이 있으니 척척 장바구니에 담는다. 천혜향 몇 알 담고 장바구니가 넘치도록 먹거리를 잔뜩 샀다. 맹맹한 귤 맛이 싫어서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고당도 귤도 평소엔 몇 번 망설이며 사는데 양이 반밖에 안 되는 천혜향은 딸이 좋아하니까 망설임 없이 산다.

 

기숙사에 사니까 과일 먹을 기회가 드물어서 아쉽더란 말을 몇 번 들어서 신경 쓰였다. 귤이나 한 상자 사놓고 까먹으라고 하면 쉬운데 딸내미만 오면 내 지갑은 쉽게 열린다. 연휴 내내 이렇게 먹다가는 큰일 나겠다. 옷이 점점 작아지는 기이한 현상을 또 경험하겠다.

 

 

오랜만에 집에서 며칠 함께 지내게 된 첫날, 둘이 꽤 재밌게 놀았다. 한 사람만 더 있어도 사람 사는 맛이 나는데 혼자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둘이 술잔을 놓고 맛있게 익은 오징어를 청양고추 다져 넣은 마요네즈에 찍어서 오물오물 먹으며 한 모금씩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시야가 흐려진다.

 

나 : 정말 혼자는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아서 못 살겠어. 빨리 남자 친구라도 만들어야지.....

딸 :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 있고, 혼자 있어야 좋은 사람이 있다는데, 난 혼자 있으니까 좋던데. 

 

딸이 주변 친구들의 연애 실패담을 한참 이야기해 준다. 자칫 잘못했으면 자기랑 엮일 뻔했던 이상한 남자와 엮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단다.

 

나와 한 번 만났다가 스쳐 지나가 버린 남자에 관해 말해주니 어쩌면 그 사람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잊으라며 나를 위로해준다. 딸이 나보다 훨씬 낫다.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나이 먹은 나보다 어른 같다. 때로는 책 보다 한 번의 경험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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