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하지 않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세상을 볼 때, 눈앞에 아지랑이가 핀다. 아지랑이가 뭔지 아니까 잠시 아련해지는 시야의 흐릿한 풍경을 즐기고 만다. 그 순간에 의미를 두지 않고 싱긋 웃고 돌아선다.
인간이 태어나서 사는 이유에 대해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내 나이 10대에 생각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은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 먼저 태어나서 살다가 간 사람이 남긴 흔적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통하는 지점을 찾기로 했다.
지식으로 쌓은 탑 위에선 발견할 수 없는 뭔가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었다. 끊임없이 그것을 먼저 발견한 사람과 접촉하거나 그런 사람을 찾아내려고 애쓰기도 했다. 내가 가진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야 했으니까.
90년대 중반에 PC 통신 천리안, 나우누리 불교동호회에 가입해서 전국구로 연결한 망에서 내가 찾는 실마리가 적힌 책과 경전을 얻어서 읽고 마지막 길은 참선, 명상 등으로 이름 붙인 초집중 상태라고 판단했다. 다양한 방법의 끝에서 발견한 공통점이 그랬다.
이대로는 세상에 붙들고 집착할 것이 한 가지도 없다고 내려놓은 시절에, 나는 내 부모가 만들어서 세상 밖에 꺼내놓은 고깃덩이 안에 잠시 혼만 들어가서 움직이는 몸과 영혼의 결합체만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누가 뭐라거나 시간이 지나도 부정하지 않을 한 가지만 알면 된다. 내 숙제는 거기까지. 나머지는 그 사실을 기반하고 재정립한 내가 살아내면 되는 거니까.
종교, 철학이라는 분류로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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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표현하거나 세속적인 자기 역할을 만들고 거기에 갇힌 사고에 익숙한 사람은 답답하다.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로 사람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정신적인 진화의 단계가 아주 다르면 부딪힌다. 말은 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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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두었던 사람을 여러모로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나이 먹어서 얻은 큰 선물 중의 하나다. 이전엔 결코 열지 못했던 문을, 아니 열기 싫었던 문을 열고 들여다볼 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말랑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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